생명을 위협하는 추위…워싱턴·베이징도 얼어붙었다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가 워싱턴, 뉴욕 등 동부 대서양 연안 주요 도시를 급습하면서 미국의 심장부가 얼어붙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동부 주요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95번 고속도로. 버지니아의 주도인 리치몬드 구간은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 덮치면서 가시거리가 2~3m 이내로 줄어들었다. 앞서가던 승용차가 눈길에 바퀴가 겉돌면서 멈춰서자 뒤따르던 차량이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들이받았다.
워싱턴 일대 도로에서는 대형 제설 차량이 7~8대씩 무리지어 부지런히 오갔지만 눈을 치우는 속도보다 눈이 쌓이는 속도가 훨씬 빠른 상태다. 눈길에 미끄러져 도로 밖으로 튕겨져 나간 차량들이 1~2km마다 눈에 띄었다. 스노우타이어를 장착한 견인 차량들이 속속 도착했지만 이미 차량 타이어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여 견인이 불가능했다. 고립된 차량 내에서 구조차량이 올 때까지 히터로 수 시간씩 버텨야 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기름이 떨어져 고속도로 중간에 멈춰 선 차량도 속출했다. 주유소가 곳곳에 있지만 입구에 눈이 쌓여 차량이 진입할 수 없었다.

워싱턴 인근에서 ‘운행 자제(Avoid Travel)를 알리던 고속도로 전광판은 오후 5시를 넘기면서 ‘운행 금지(Ban Travel)로 바뀌었다. 고속도로 진입로는 이미 눈으로 막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95번 고속도로에서 워싱턴DC를 향하는 66번 고속도로로 갈아타는 분기점도 폐쇄됐다.
주택지역도 고립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문의 절반 이상을 눈이 가로막아 외출 자체가 불가능한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제설작업은 엄두도 못낼 상황이다. 주차된 차량은 눈으로 완전히 덮여 위치를 확인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비상식량이라도 구해보겠다고 간신히 찾아간 식료품점은 직원들이 출근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관공서와 은행 등도 이미 지난 22일 오전을 끝으로 업무를 중단했다.
워싱턴DC와 뉴욕을 비롯해 11개 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항공기 열차 지하철 버스 등 교통수단이 운행을 중단했다. 24일까지 일대 9290편의 항공기 운항이 취소됐다. 메릴랜드 볼티모어항에 입항 예정이던 유람선은 입항을 연기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뉴저지 등 13개주 20만여 가구가 대규모 정전으로 불편을 겪었다. 뉴저지 남단 동부 해안 케이프 메이 지역에서는 예상치 못한 홍수가 겹쳤다. 델라웨어는 해안에 불어닥친 강풍이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 바닷물이 눈덩이와 함께 인근 도로와 주택가로 흘러들었다.
출퇴근이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워싱턴의 연방정부 기능도 사실상 마비됐다.
CNN은 폭설 관련 사고로 최소 14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했으며 폭설이 이어지면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번 눈폭풍으로 인한 피해자는 전국적으로 8500만명에 달한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23일까지 워싱턴DC 일원에 초속 80㎞의 강풍과 더불어 75㎝ 눈이 쌓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1922년 1월의 71㎝의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시간 뉴욕 적설량은 50cm를 넘어섰으며 일요일까지 최대 76cm에 달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중국에도 기록적인 한파가 닥쳐 대륙의 절반 이상이 냉동고로 변했다.
수도 베이징은 23일 오전 한때 기온이 -17도까지 떨어져 30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베이징 교외 자이탕 지역은 수은주가 -29.8도까지 내려갔다. 강풍까지 몰아친 베이징 도심에는 행인의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다.
겨울철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많지 않은 상하이도 24일 아침 기온이 -7도로 떨어져 35년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서부내륙 충칭에서는 23일 폭설이 내려 항공기 200여편이 결항됐다. ‘중국의 화로로 불릴 정도로 평균기온이 높은 충칭에 눈이 내리기는 20년만에 처음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고속철도망도 역대급 한파에 무용지물이 됐다. 상하이~베이징, 상하이~쿤밍 등을 잇는 고속철도는 주말 강추위에 일부 지역 운행속도가 시속 10km를 밑돌았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