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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나운서] 김정일 “이름 때문에 오히려 덕 봤죠”
입력 2016-01-22 14:08 
디자인=이주영
‘아나운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말 잘하는 사람, 혹은 아나테이너죠! 그러나 이들의 ‘진짜 사는 얘기는 얼마나 알고 있나요? 똑 부러진 이미지의 아나운서가 아닌 인간적인 면모를 ‘키워드로 보여드립니다. 이들의 얘기에 ‘아(AH)!하고 무릎 탁 칠 준비됐나요?<편집자 주>


[MBN스타 이다원 기자] SBS 김정일 아나운서는 그 이름 때문이라도 다시 한 번 귀에 박히는 인물이다. 북한의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터라 재밌는 일도 많이 겪었다고.

그래도 이름 때문에 손해본 적은 없어요. 오히려 덕을 봤죠. 많은 분이 제 이름 때문에 절 기억해줬으니까요. 하하.”

1988년 아나운서 입문 이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김정일의 지나온 28년을 들어봤다.



◇ 키워드 총평 : 김정일, 아나운서로서 자긍심을 세운다

키워드1. 라디오, 기본기를 익혀라

김정일의 첫 데뷔는 SBS가 아닌 CBS 라디오였다. 1988년 C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처음으로 방송물을 맛봤다.

CBS에서 5년3개월을 근무했어요. 라디오는 오래된 매체라 새내기 아나운서로서 기본기를 익힐 수 있는 훌륭한 환경이었죠. 사실 요즘 아나운서들은 라디오가 조금 뒤떨어진 매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영상이 없으니 말의 맺고 끊기, 여백 이용 등 오디오에 대해 생각할 게 정말 많거든요. TV에서는 기껏해봤자 현장묘사 정도 배울 수 있지만, 라디오에선 굉장히 배울 게 많아요. 또한 부담을 덜 갖고 배울 수 있어서 탄탄하게 배운다면 훨씬 좋은 환경이죠. 아나운서는 나이가 들면 외형적 매력이 떨어지는데 결국엔 오디오가 좋은 사람들이 남더라고요. 그럴 때 라디오에서 닦은 기초가 정말 많이 도움이 될 거예요.”

키워드2. ‘김정일 남조선 최고 아나운서?

이름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북한 기자들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몇 년 전에 SBS가 북한과 교류를 위해 농구대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북한 기자들이 우리 회사에 견학을 왔었어요. 전 뉴스 대기 중이었는데, 북한기자와 딱 마주쳤죠. 안내하는 사람이 절 보고 ‘저 아나운서 이름이 김정일이다고 말했는데, 속으로 정말 반응이 궁금하더라고요. 근데 1초도 안 걸려서 ‘이름 때문에 남조선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겠구나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긴장했는데 다행이었어요. 하하. 그 친구들도 지도자의 이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충성심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거겠죠?”

키워드3. 아나운서 28년

벌써 아나운서로서 28년의 세월을 보냈다. 롤러코스터 같은 길을 돌아보며 점수를 매겨달라 부탁했다.

85점 정도 줄 수 있을까요? 완벽하지 않았지만 좀 높은 점수를 줬어요. 겸손과 후회 등이 얽힌 점수라고나 할까요?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땐 왜 그랬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있는 점수! 대신 직업에 대한 만족도나 내 선택에 대해선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아나운서가 전국적으로 1000명이 채 안될 텐데. 그런 걸 감안하면 제가 아나운서로 살아올 수 있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잖아요? 선택받은 거니까요. 물론 아나운서를 두고 ‘앵무새라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 99.9% 부인하고 싶어요. 베토벤의 악보를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서 연주가 달라질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아나운서는 앵무새가 아니라고 봅니다.”

사진=SBS


키워드4. 남북한 예능을 꿈꾼다

오랫동안 교양, 스포츠 위주로 활약해온 그.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갈증을 물으니 고개를 내젔는다.

글쎄요. 다양한 화제로 얘기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주제를 던져주면 어떤 얘기든 나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이 지난날 얘기를 하는 콘셉트는 젊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니, 그런 건 지양하려고요. 대신 남북관계 관련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대학원에서 북한정치학을 공부했는데 잘 활용할 수 있을 듯해요. 쏠림 현상 강한 예능판에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키워드5. 내 생애 최고의 위기

‘내 생애 최고의 위기라는 키워드를 던지니, 씁쓸하게 웃으며 2010년 동계올림픽 생중계 논란을 떠올렸다. 당시 제갈성렬 해설위원과 함께 독특한 중계를 펼쳤으나, 일각에선 산만하다며 비판이 일기도 했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누굴 탓하고 싶진 않아요. 방송인으로선 참 힘든 과정이었죠. 당시 공적인 자리에선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해설위원과 색다른 해설을 하는 친구였지만 그런 비판을 받을 거라곤 예상하진 못 했어요. 극복 방법이요? 시간이 지나니까 다 회복되더라고요.”

키워드6. 도시농사꾼, 김정일

오랫동안 외길을 걸어온 그가 최근 새로운 분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도시 텃밭을 가꾸는 일이다.

저도 나름대로 걱정과 아픔이 있었는데 마침 한 교회에서 텃밭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땅을 나눠주더라고요. 그래서 작년부터 도시 텃밭 가꾸기를 시작했죠. 결과는 만족스러웠어요. 쌈채소 15종류, 가지 오이 호박 등등 20여가지를 길렀는데 풍작이었거든요. ‘힐링이란 단어를 평소엔 안 좋아하는데 한동안 땅을 일구다 보니까 ‘이래서 사람들이 힐링한다고 하는구나를 느꼈어요. 땅에 앉아있으면 아무 생각이 안 들거든요. 그렇게 작년 한해 주말은 내내 땅위에서 살았어요. 처음 2주는 농사짓는데 숨이 안 터지고 너무 힘들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잔풀 하나도 안날 정도로 잘 가꿨어요. 올해요? 그 중 가지가 그중 제일 잘됐는데, 상추와 가지만 심어보려고요. 하하.”

[김정일은 누구?] 1963년 출생으로 1988년 CBS 공채 아나운서로 방송가에 발을 디뎠다. 이후 1993년 SBS 공채3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SBS ‘뉴스 퍼레이드 ‘모닝와이드 ‘생방송 투데이 등을 진행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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