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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개그人] ‘예능 대부’ 이경규, 그의 역사는 ‘현재진행형’
입력 2016-01-17 15:09 
사진=MBN스타 DB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멋있음 대신 ‘웃음을 택한 용기 있는 자들이 꿈꾸는 코미디는 어떤 모습일까요? 웃음 뒤에 가려진 이들의 열정과 고통, 비전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편집자 주>


[MBN스타 유지혜 기자] 치열한 예능계에서 35년여 간 현역으로, 최고의 MC로, 개그맨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경규, 그는 이미 ‘레전드다.

최근 MBC ‘무한도전의 ‘예능총회 특집에 출연한 이경규는 김구라, 유재석, 김영철, 박명수 등 내로라하는 예능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관록을 내뿜으며 ‘무한도전의 또 다른 레전드 편을 찍어냈다. 시청자들은 이경규가 왜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라며 이경규에 감탄했다.

1981년 데뷔한 이경규는 쉼 없이 예능계를 지켰다. 때로는 영화 감독 혹은 제작자로 나선 경험은 있어도 대중 곁의 이경규는 언제나 예능인이었다. 그런 이경규가 약 35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가장 ‘감각 있는 예능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본다.



◇ ‘몰래카메라와 ‘양심냉장고, 그가 예능 트렌드였다

이경규는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 은상으로 데뷔했다. 데뷔하자마자는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나 1984년부터 방송된 MBC ‘청춘만만세의 ‘공작클럽이라는 코너를 통해 ‘띠용~ 같은 유행어를 만들며 몇몇 CF를 찍기도 했다.

그랬던 이경규가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바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다. 1988년부터 방영된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이경규는 주병진과 2MC로 발탁, ‘몰래카메라 ‘이경규가 간다-양심냉장고 등의 코너를 이끌었다. 그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가장 많이 방영된 코너인 ‘몰래카메라의 주인장이기도 했고, 가장 많은 코너를 진행한 연예인(총 28개, 2위는 김용만 23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몰래카메라와 ‘이경규가 간다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센세이셔널한 코너였다. ‘몰래카메라는 연예인부터 정치인까지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의 평소의 인간다운 모습과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들의 당황하는 표정들을 고스란히 담아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경규가 간다-양심냉장고는 MBC에게도, 이경규에게도 소중한 기회였다. 이경규는 ‘몰래카메라의 성공 후 유학을 다녀오고 영화 ‘복수혈전을 낸 후 ‘일밤마저 2%의 시청률을 찍어 ‘이프로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양심냉장고를 통해 ‘일밤과 이경규는 동시에 예능계의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 ‘칠전팔기의 정신이 그를 일으켰다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만 맡았을 것 같았던 이경규에게도 침체기는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영화를 살려 1992년 ‘복수혈전이라는 영화를 만드는 등 영화 산업에 몰두했으나 결국 실패를 하고 다시 예능계로 돌아왔다.

‘몰래카메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이경규는 1990년대 중반 꾸준히 ‘코미디 동서남북 ‘코미디 대행진 ‘오늘은 좋은 날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다시금 입지를 다졌다. 그는 ‘오늘은 좋은 날의 ‘별들에게 물어봐 코너에서 ‘별들에게 물어~봐~란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재기에 성공했고, 마침내 ‘일밤에도 다시 입성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도 ‘복수혈전의 실패로 많은 놀림(?)을 받고 있지만, 몇 차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개그맨이 직업이라면 영화는 나의 꿈”이라며 아직도 영화에 대한 꿈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경규는 2007년 차태현 주연의 영화 ‘복면달호의 제작 및 공동감독을 맡았고, 2013년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영화에 투자하며 꾸준히 영화산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경규는 그야말로 ‘칠전팔기의 자세로 영화와 개그에 몰두했다. 그가 만약 ‘몰래카메라의 영광에 빠져 다시 재기에 나서지 못했다면 지금의 이경규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도 이경규의 롱런 비결로도 꼽히는데, 그는 ‘양심냉장고 출연 당시, CF에 ‘양심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거절하고는 나는 도로 위의 양심인데, 그 양심을 팔 수 없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의 위기론이 주목을 끌었던 2008년 즈음에도 이경규는 ‘칠전팔기 정신으로 이겨냈다. ‘이경규가 간다 외에도 ‘전파견문록 ‘느낌표 ‘대단한 도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전성기를 이끌던 이경규는 ‘돌아온 몰래카메라가 종영하고 ‘간다투어 ‘라인업 등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MC 이경규의 시대는 끝났다는 위기론이 돌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경규는 수많은 위기가 있었는데 이런 정도가 위기라고 할 것도 없다”는 의연한 태도를 보였고, 심기일전 끝에 2009년 ‘남자의 자격으로 위기론을 털어냈다. 이경규는 프로그램에서 공황장애를 앓고 있음을 고백하는 등 그에게는 낯설법도 한 관찰 예능에서 솔직하고 ‘인간 이경규의 모습을 드러내 다시금 예능 트렌드의 중심에 서게 됐다.


◇ 이경규, 그는 ‘스타 굴착기였다

이경규는 뿐만 아니라 스타 발굴에 능한 이로도 유명하다. 강호동, 김용만, 박명수, 박경림 등이 바로 주인공이다. 19세의 ‘천하장사 강호동을 보고 첫 눈에 예능감을 꿰뚫어본 후 너가 안 되면 내가 옷 벗겠다”는 강경한 태도로 자신의 집에서 그를 재우고 먹이며 스타로 키워낸 이경규의 일화는 꽤나 유명하다.

김용만은 이경규가 선호하는 파트너로 언급했던 인물로, ‘버럭하는 이경규와 부드러운 김용만은 훌륭한 MC 조합이었다. 김용만은 후에 이경규가 자신에게 진정한 코미디를 가르쳐준 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경림은 이경규가 내가 얹혀갈 것”이라고 말할 만큼 총애를 받는 후배였으며, 이들의 호흡 또한 ‘풀하우스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찰떡궁합이다.

박명수는 이경규의 ‘호통 개그를 잇는 후계자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와 이경규는 몇 차례 ‘원조 호통과 ‘신흥 호통으로 재미난 장면들을 연출해냈는데, 최근 ‘예능총회에서도 그 호흡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명수는 과거 ‘놀러와에서 이경규가 코너를 내준 일화를 밝히며 모두가 글렀다고 했을 때 ‘넌 무조건 된다고 해준 게 선배님이다. 그 말이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말 중 하나”라고 고마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후배들을 발굴해냈지만 정작 이경규는 생색을 내거나 ‘라인 몰려다니기를 하지 않고 내가 그 때 필요해서 쓴 것 뿐”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때로는 후배들에게 내가 얹혀가는 신세”라고 말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35년이 넘도록 치열한 예능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경규의 경력뿐 아니라 이경규의 대인배 면모 때문에도 많은 후배가 따르고 롤모델로 여기고 있다.


◇ 이경규, 머물러 있지 않고 늘 분주한 ‘현역

이경규는 머물러 있지 않고 늘 분주했다. 예능 트렌드를 끊임없이 읽어내고 도전하며 다양한 스타일의 프로그램을 이끌어갔다. ‘남자의 자격에서는 중년 남성들이 주인공이 되는 리얼 관찰 예능의 붐을 일으켰고, ‘아빠를 부탁해에서 딸 예림 양과 출연해 자녀와 함께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도 해냈다. 이외에도 ‘나를 돌아봐 ‘외인구단 등에서도 활약 중이다.

누구보다 빠른 감각으로 그는 통산 8회 연예대상 수상자(MBC 1991, 1992, 1995, 1997, 2004, 2005/ KBS 2010/ SBS 2014)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유재석(11회) 기록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이며 유재석, 강호동과 함께 방송3사 연예대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수치다. 또한 역대 MBC연예대상 역대 대상 6번으로 최다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현재 유재석, 강호동, 박명수, 김구라 등에게 존경받는 MC로 평가받고 있다.

35년간 지독한 자기관리로 한 번의 ‘논란도 없이 예능인의 자리를 지킨 이경규. 그는 여전히 연말 각 방송사 연예대상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고, 프로그램에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일으키는 예능의 중심에 서있다. ‘예능 대부의 ‘레전드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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