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000m,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은 히말라야 6개산을 6개월만에 등정한 이가 있다. 최근 알프스 산맥 82개 봉우리를 단 62일만에 모두 등반해 등반가들 사이 역시 ‘스위스 머신이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세계적인 스피드 클라이머 율리 스텍(Ueil Steck·40)의 얘기다.
고기능성 아웃도어 브랜드 마운틴하드웨어의 후원을 받으며 모델로도 활동 중인 율리 스텍이 ‘82서밋프로젝트 성공기념으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82서밋프로젝트는 알프스 82개 봉우리 등정에 도전한 것을 말한다. 12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클라이밍센터에서 그를 만나 빠른 시간 내 험준한 산을 잘 타는 비결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쌀쌀한 한국의 날씨가 스위스와 비슷해 편안하고 정감간다”며 한국의 첫 인상을 표현한 율리 스텍은 이번 ‘82 서밋프로젝트는 한 마디로 즐기듯이 참여한 유쾌한 도전이었다”고 평가했다. 극한의 날씨와 부족한 산소 등 험난한 방해요소에도 알프스 등반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으로 타고난 집중력을 꼽았다. 목표를 향한 집중력 덕분에 좌절할 것 같은 위기의 순간에 스스로 동기부여될 수 있도록 정신적 채찍질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아무리 위기의 순간이 오더라도 정면돌파해 끝을 보는 스타일”이라고 본인의 강점을 말했다. 험준한 산을 등산할 때 두려워서 물러서기 보다는 그 순간을 즐기고 극복하는 것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율리스텍은 매해 82서밋프로젝트와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한다. 위험한 산을 그것도 장비 도움없이 홀홀단신 오르내리는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 마음은 어떨까. 그는 혼자 지내는 아내 걱정이 제일 많이 된다”며 하지만 아내의 든든한 지원과 응원 덕분에 새로운 도전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알프스 산맥 융프라우로 둘러싸인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나고 자라 12세 때부터 산을 타기 시작한 그는 ‘등산은 산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산을 ‘정복하기 위해 수없이 나사를 박고 인공 루트를 설치하는 일부 등산가들과 달리 맨몸으로 산을 오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대신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최소한의 장비를 이용해 등정에 나선다. 마운틴 하드웨어와 10년 넘게 유지한 인연의 비밀도 여기에 있다. 마운틴 하드웨어는 오로지 율리 스텍만을 위한 이동용 키트(등산용 상·하의 제품)을 제작한다. 내구성을 강조하고 전략 포켓을 넣는 것 외에 율리스텍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심플하고 편안하게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마운틴 하드웨어 생산팀 관계자는 매해 율리스텍의 프로젝트를 위해 수개월간 등산복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며 율리 스텍의 도전을 통해 제품의 기능을 직접 검증한 후 제품 제작에 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율리 스텍이 직접 착용하고 등산을 하며 검증된 제품은 디자인 상용화를 거쳐 다음 시즌 마운틴 하드웨어 신제품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매년 경이로운 도전으로 산악계를 놀라게 하는 율리스텍의 2016년 계획은 역시나 8000m가 넘는 봉우리를 포함한 히말라야 14개좌 등반에 성공하는 일이다. 지난2013년 안나푸르나 1봉 등정 이후 3년만의 시도다.
그는 지난 도전(안나푸르나 1호봉)은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손에 꼽는 가장 힘들었던 도전이지만 그만큼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산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인생의 마지막 산으로 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자 확고하게 ‘히말라야를 선정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찔한 위험을 즐기고 싶어서다. 산을 향한 그의 끝없는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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