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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끝 그린란드서 희망의 편지를 부치다
입력 2016-01-04 11:22 
빙하의 땅 그린란드. 세상의 끝인 이곳 겨울은 영하 50도까지 떨어진다. 모든 게 얼어붙는 이곳에도 얼지 않는 게 있다. 희망과 사랑이다.

세상의 끝은 어떨까. 문득,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년 투어월드 첫 호. 그 희망을 세상의 끝에서 가져오는 거지요. 사실, 모든 희망의 끈은 절망의 끝에서 피어나는 법이니까요.
제가 그린란드를 찾은 건 3년 전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지구의 끝, 사람의 땅인 그린란드를 찾았습니다. 아직도 그 첫 순간이 기억납니다. 코끝을 타고 폐부 깊숙이 들어왔던 맑은 공기의 그 기분. 말로만 듣던, 그림으로, 영상으로만 봤던 그린란드, 캉겔루수아크라는 이름의 도시였습니다.
그린란드의 여름 날씨는 한국의 초겨울처럼 순했습니다. 먼지 한 톨 느껴지지 않는 공기는 완벽하게 투명했지요. 바위와 얼음 덩어리가 번갈아가며 끝없이 이어져 하늘과 맞닿았고 그곳에 구름이 스며들었습니다.
여장을 푼 곳은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만든 듯한 2층짜리 철제 건물이었지요. 투어는 다음날 시작했습니다.

순박한 이곳 분들은 아이들의 스쿨버스로 쓰이는 군용차량을 기꺼이 내주셨지요. 아, 말이 군용차량이지, 실은 군용 장갑차에 가깝습니다. 버스의 바퀴 하나 지름이 제 키만 했거든요. 도로 사정은, 지구의 끝이라 할 만큼, 참으로 열악했습니다. 아스팔트로 달릴 수 있는 시간은 채 5분이 안 됐거든요. 곧바로 모굴스키 경기장 같은 비포장 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한참을 달렸을까. 호수 끄트머리에서는 소풍을 나온 듯한 가족이 먼 나라, 대한민국에서 온, 이방인을 향해 손을 흔듭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참으로 흐뭇한 광경입니다. 아빠는 지구의 끝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시를 합니다. 엄마와 아이들은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표정 하나하나에, 사랑이 묻어납니다.
그저 놀랍습니다. 빙하의 땅, 뭐든지 얼려 버리는 세상의 땅 끝에서도 가족들은 저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절대, 얼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인 겁니다.
30분을 더 가니 본격적인 빙하 구간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바윗길을 걸었습니다. 이내, 바닥은 얼음으로 바뀝니다. 얼음 위를 좀 더 걸으니 눈길입니다. 햇살을 반사하는 눈길에 눈이 부셔 고개를 들었더니, 아. 그 눈길 너머에 빙하가 거대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영화 제목처럼 한없이 투명한 블루. 빙하의 푸른빛에 눈이 시려옵니다. 조금 더 빙하 쪽으로 다가섰습니다. 금방이라도 ‘쩌억 하고 갈라져 내릴 것만 같은 크랙과 크레바스가 살벌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습니다. 무섭고도 숙연한 순간. 대자연의 거대한 힘을 느낍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 풍경 참으로 낯섭니다. 지구 온난화 덕에 전 세계가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정작 지구의 끝에 사는 마을 주민들은 유유자적이니까요. 낚시를 하고 바비큐를 구워 먹고. 그들에게 온난화가 어떤 의미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한결같습니다. 그건, 인간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자연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땅이 뜨거워진 뒤엔 또 차가워지는 순간이 반복될 뿐이라고.”
맞습니다. 그들에게 이 땅은, 지구는 거대한 ‘모성을 품은 땅일 뿐입니다. 가이아이론처럼 말이지요. 그들은 거창하게 연말을 보내거나, 연초를 맞이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족과 함께 담담하게 세월을 보냅니다. 희망이란 게 그렇거든요. 거창하게 오는 게 아닙니다. 소리 없이, 조용히 왔다, 조용히 가는 겁니다. 빙산 트레킹을 하다 옐로코스 입구에 세워진 대형 우체통 앞에서 저는 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불편한 이곳.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세상의 끝, 이곳에서도 절대로 얼지 않는 게 있다. 그게 사랑과 희망이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이 편지에, 사랑과 희망의 의미를 담아, 나에게 선물한다고 말이지요. 일룰[리사트·캉켈루수아크(그린란드) = 글·사진 박상선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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