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어느 순간 엄마] (9)아기가 태어난 후 달라진 것을 꼽으라면
입력 2015-12-24 15:07  | 수정 2016-03-04 13:54

아기 출산 후 새롭게 태어난 것 같다는 흔하디 흔한 말을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식상하지만 나 역시 ‘엄마로써 지난 3월 거듭 태어났다. 아들 덕분에 ‘워킹맘이란 타이틀을 얻었고, 아이돌보미 선생님, 소아과 의사 선생님 등을 비롯한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맺게 됐다. 기존에 알던 사람들과는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며 사무적인 관계에서 ‘인간미 넘치는 사이로 발전해가고 있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세상의 일을 기록하고 독자에게 전하는 기자로서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뉴스가 하나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에서 20대 직원들을 구조조정을 한다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회사에 들어온 지 1년 정도 밖에 안되는 신입사원들을 희망퇴직이란 명목하에 내보낸다는 소식에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크게 퍼졌다.
후배에게 제보가 들어왔다. 육아휴직자들에게도 두산인프라코어가 희망퇴직을 권고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추가 취재를 지시했다.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육아휴직자들은 사실상 나가라는 말로 들렸다”고 말했다. 회사 복직을 차근차근 준비하던 육아휴직자는 희망퇴직 전화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게 맞는지, 여기서 자신의 커리어를 중단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만약 내가 육아휴직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는 내용이다. 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희망퇴직이다보니 회사 입장에선 육아휴직자들을 포함해 당연히 전화를 돌렸을 법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느라, 혹은 초등학생 자녀와 씨름하고 있는 엄마로써 이같은 전화를 받았다면? 단지 휴직 중이라는 이유로,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더 쉽게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이 됐다면? 한번도 회사를 그만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됐을 때 경제적 부담은 또 어떻게 하지 등등.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됐다. 물론 기사는 원칙대로 객관적인 팩트만을 담아 나갔다. 그러나 육아휴직을 해 본 워킹맘으로서 어쩌면 회사 어려운 사정 등에 묻혔을 내용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감을 샀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
한 대기업에서 워킹맘을 위한 생활지침서를 출판했다. 책 제목은 ‘기다립니다. 기대합니다다. 제목을 보는 순간 ‘찡했다. 난생 처음 육아의 세계에서 허덕이며, 특히 집 밖으로 몇 개월 간 나갈 수 없을 때, 그 몇 개월이 지나면 돌아갈 회사가 있다는 점에서 안도했고,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그런 회사에서 워킹맘을 기다리고, 또 기대한다는 말 한 마디가 왜 그렇게 고맙게 느껴지는지. 단신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난 구체적인 사례 등을 끄집어 내 기사를 썼다. 보다 많은 워킹맘들이 이를 읽고 용기를 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아니나 다를까. 해당 기업 관계자는 출판 기사를 보니 아이가 있는 기자와 그렇지 않는 기자로 딱 갈리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 티를 가급적 내지 않고 기사를 쓰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나도 한 아이의 엄마인가 보다라고 느꼈다.
아기를 낳은 후 취재원들을 대할 때 보다 다양한 주제의 얘기를 할 수 있게 됐음은 물론이다. 딱딱한 ‘공장 얘기만 하는 게 아니어서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처음 보는 사람과 육아 얘기 하나로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고, 고군분투하는 워킹맘으로 똘똘 뭉치기도 하며 아동학대에 진심 분노를 감추지 않게 됐다.
상대방 상황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육아 얘기를 꺼내는 일이 조심스럽긴 하다. 아이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는데 만나자마자 아이 사진을 보여주거나, 예의상 물었는데 기회가 왔다는 듯 아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진상맘이 되는 것 만큼은 경계해야한다. ‘애 키우는 엄마가 일도 하네라는 말보다는 ‘능력있는 여자가 애도 있네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다.
가족과의 대화꺼리 역시 늘었다. 그냥 딸에서, 며느리에서 ‘성호 엄마가 됐기 때문이다. 성호의 몸짓, 손짓 하나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물론 남편과 오붓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런 아쉬움(?)을 토로하자 육아 선배들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제 둘만의 사랑이란 패러다임에서 ‘희생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해”라고. 이같은 패러다임 시프트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단다. 맞는 말 같다.
외모의 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 출산 후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 똥배가 최근 내 고민 중 하나다. 마구 빠지던 머리숱은 어느 정도 출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으나 어째 머릿결에 힘이 없어 괜히 아줌마 파마를 해야하나 고민한다.
사실 아기를 낳은 후 내 인생에서 달라진 것을 꼽으라면 한도 끝도 없다. 매 순간 자라는 아기로 인해 달라지는 부분 역시 끊임없이 바뀌고 있어서 규정하기가 힘들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엄마로써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인생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아이를 낳고 잘 기르는 법을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엄마로써 아이와 함께 자라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아기 나이 1살이 곧 엄마 나이 1살과 다름없다고 했을 때 아장아장 걸음마 떼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그러고보니 아기 낳은 후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수십번의 성장통을 더 겪을 테지만 먼 훗날 그래도 ‘그땐 그랬지 웃으며 추억할 수 있길 바란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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