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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청구공사금 31조…조선·건설업 `회계폭탄`
입력 2015-12-23 17:36  | 수정 2015-12-24 11:09
A건설사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12년 착공한 석유 플랜트 공사 B프로젝트는 공사비 2조원을 들여 올해 초 완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사 도중 사우디 정부가 자국 하도급업체 및 노동자 우선 정책을 펴면서 공사비가 1000억원 이상 더 들었다. 숙련된 인력이 부족한 현지 노동자로 교체하면서 공사기간이 지연된 탓이었다. 3분기에 1030억을 비용처리했지만 추가 손실 가능성이 크다. 내년부터 이 같은 미청구공사 대금에 대한 회계처리기준이 엄격해지기 때문에 올해부터 대손충당금을 쌓을 계획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조선업체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공사에서 우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실제 회수 여부가 불투명한 미청구공사 대금이 올 4분기 결산 때 '잠재 폭탄'이 될 것이라는 염려 목소리가 높다. 국제유가가 글로벌 금융위기 후 최저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주요 발주처인 중동 국가들 지급능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총 30조원에 달하는 건설·조선업체 미청구공사 대금 가운데 충당금을 10%만 쌓아도 3조원가량 영업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이날 매일경제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분석한 결과, 건설·조선업종 내 상위 20개사의 미청구공사액은 3분기 말 현재 총 31조원으로 집계됐다.
기업별로는 대우조선해양(4조9887억원) 삼성중공업(4조1544억원) 현대중공업(4조1276억원) 등 조선 3사가 모두 4조원을 웃돌았다. 현대건설(3조1090억원) GS건설(2조6371억원) 삼성물산(2조1505억원) 삼성엔지니어링(1조3681억원) 대림산업(1조2379억원) 등 대형 건설사들도 1조~3조원에 달했다.

금감원은 미청구공사 대금 가운데 실제 손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부분을 평균 3~5% 선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향후 유가 추가 하락으로 중동 등 주요 발주국의 재정상태가 악화할 땐 최고 10% 선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건설·조선업체들이 앞으로 적게는 1조원, 많게는 3조원 이상의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회계처리 변화는 지난 10월 28일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발표한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에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은 조만간 구체적인 회계지침을 확정해 내년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건설·조선업체들은 내년 1분기 사업보고서 작성 때부터 사업장별 공사진행률, 미청구공사액, 대손충당금 적립내역 등을 공시해야 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올해 4분기 예상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가 2742억원이다. 미청구공사액 3조1090억원의 10%인 3109억원을 충당금으로 쌓으면 분기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 4분기에 1100억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삼성물산(10% 충당금 2150억원), 363억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GS건설(10% 충당금 2637억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미청구공사 금액 충당금 반영에 따라 건설·조선업체들의 이익이 일시적으로 둔화될 수 있지만 회계·재무 신뢰 회복 측면에선 긍정적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기업들이 보수적 회계처리를 할 가능성이 높아 4분기 실적 시즌을 맞아 일시적인 불안감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수주산업의 신뢰 제고 효과를 가져와 주가 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서는 반발이 거세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부문별이 아닌 사업장별로 미청구공사 금액과 원가율을 분기마다 공개하는 것은 영업기밀을 경쟁자에게 알리는 것과 같다"며 난색을 표했다.
■ <용어 설명>
▷ 미청구공사 대금 : 공사는 진행했으나 아직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공사비를 말한다. 청구는 했지만 발주처가 지급을 거부하거나 미뤄서 받지 못한 미수금과는 차이가 있다. 원칙적으로 원자재값 상승, 설계 변경 등에 따라 우발적으로 늘어난 공사비를 말하지만 저가 수주에 따른 부실을 숨기기 위한 변칙회계 수단으로 종종 악용된다.
[최재원 기자 / 김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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