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본 실버주택 가보니 ‘이미 노년층과 로봇은 친구’
입력 2015-12-23 17:19 

일본 도쿄 신주쿠역에서 서쪽으로 3㎞정도 달려 시부야 혼마찌 일대 주택가로 들어가면 지상 5층짜리 맨션이 나온다. 겉보기에 저층 아파트처럼 보이지만 주택업계 1위 다이와하우스공업이 지난달 준공해 최근 문을 연 도심형 실버주택이다.
전용면적 18~20㎡ 원룸 57실과 전통 화실(和室)처럼 꾸며진 홀, 미용실, 다이닝바 등으로 이뤄진 건물 내에는 개호(介護·일상생활을 곁에서 보살펴 준다는 일본식 표현)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간호사 등 전문인력만 있는 게 아니었다. 큰 머리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왕눈을 한 로봇 물개 ‘파로(PARO)가 노인들이 말을 걸고 몸을 쓰다듬자 진짜 동물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짖었다.
다이와하우스 실버주택에서 만난 한 간병인은 여기서 아이언맨 로봇수트를 입은 할머니가 물개 로봇과 대화하는 걸 봐도 놀라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실제 간병인과 실버주택 직원들은 고령인 입주자를 휠체어나 침대에 옮길 때 최첨단 로봇 수트 ‘하루(HAL·Hybrid Assistive Lim)를 허리에 착용하고 있었다. 하루는 사람의 피부표면에서 생체전위(電位) 신호를 읽고 동작을 파악해 움직이는 걸 도와줘 고령자의 무게가 최대 40% 가벼워지는 효과를 낸다. 부축이 필요한 고령자도 하루를 양쪽 다리에 착용하면 로봇이 의사를 파악해 각 관절이 움직이도록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혼자서 걸을 수 있다.
초고령사회 문턱에 선 일본 건설사들은 주택 건설이 벽에 부딪히자 운영과 관리 등 홈 서비스를 새로운 돌파구로 삼고 있다. 특히 다이와하우스는 무명 벤처기업에 과감히 투자해 생활지원 로봇 개발과 임대사업을 동시에 전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다이와하우스는 2008년 쓰쿠바대 벤처기업인 ‘사이버다인에 투자를 시작했다. 사이버다인이 개발한 ‘하루는 영화 ‘아이언맨의 로봇 수트 처럼 노인들도 무거운 물건 쉽게 나를 수 있어 다이와하우스가 임대 운영하는 실버주택에 거주하는 노인들과 간병인들을 위한 제품으로 특화했다. 가격이 무려 1000만엔(약 1억원)에 달하는 하루는 현재 160여곳 개호·의료시설이 리스 계약 형태로 사용 중이다.

물개 로봇 ‘파로는 풍부한 감정표현으로 동물치료 요법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 힐링 효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36만엔(약 350만원)의 고가임에도 일본 국내에 2000여개, 해외에 4000개 가까이 각각 팔렸다. 난청 고령자를 위한 대화 지원 로봇 ‘코뮨(COMUOON) 도 인기다.
다이와하우스는 지난 9월엔 무명 벤처회사인 ‘세븐드리머즈에 투자해 티셔츠, 수건, 속옷 등 빨래 후 종류별로 개서 정리해주는 로봇 개발에도 나섰다. 오는 2017년 가정용 로봇을 출시하고 2020년엔 빌트인으로 만들어 주택에 도입할 계획이다. 초창기엔 ‘건설사가 웬 로봇 사업이냐는 핀잔을 들었지만 지금은 다이와하우스의 라이벌이 도요타와 혼다”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다나카 카즈마사 다이와하우스 휴먼케어사업추진부 이사는 병원·요양시설 등에 로봇을 시범적으로 도입한 뒤 일반 주택에도 서비스 형태로 확대할 예정”이라며 집집마다 사람과 로봇이 사이좋게 사는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와하우스 외에도 지난 9월부터 일본 대형 이동통신사인 소프트뱅크가 내놓은, 사람의 감정을 읽는 로봇 ‘페퍼(Pepper)를 임대주택 입주자 모집 상담소에 전격 배치했다. 가전 제품 메이커인 파나소닉은 주택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파나홈을 만들었는데 ‘홈 서비스가 무기다.
하지만 일본 건설업체들이 로봇까지 동원해 비롯한 주거 서비스에 문화 개선에 공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인구 감소로 단순 시공·분양으로는 적자가 뻔한 주택 시장 때문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착공 주택은 89만2261가구로 전년 보다 9% 줄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신규 착공 주택은 2030년에 53만가구까지 쪼그라들 것으로 내다봤다. 초고령화도 과제다. 오는 2025년 단카이세대(1947년~1949년 출생)가 75세 이상 고령자가 된다. 75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 인구의 18%에 달할 전망이다. 고령자가 자신의 집에서 건강하고 안심하고 살려면 기술의 힘이 필요하고 로봇이 도울 수 있다는 게 다이와하우스의 생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1년부터 안부 확인과 생활상담 등 최소한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고령자 임대주택을 민간이 짓도록 유도하고 있다. 일본은 고령자 임대주택을 향후 10년간 60만가구로 늘릴 계획이다. 지주가 땅을 주택 업체에 장기 임대해주면, 주택 업체는 고령자를 위한 임대주택을 짓고 운영·관리를 맡는다. 다이와하우스 관계자는 주택 산업의 키워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며 인구는 줄어드는데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다양해져 튼튼한 집(내진성)과 친환경 에너지 주택에 이어 다음에 뜰 집은 로봇과 함께 사는 공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이와하우스는 효고현 미키시에 위치한 ‘미도리가오카지구(綠が丘地區) 뉴타운 재생 사업에도 로봇을 활용할 방침이다. 지난 1971년 오사카와 고베의 대규모 베드타운(146만㎡)으로 개발됐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 고령화율이 38.8%에 달하는 곳이다.
다이와하우스 뿐 아니라 세키스이하우스, 파나소닉의 계열사 파나홈, 다이토켄타쿠 등 일본 대표 주택 업체들은 일제히 임대주택 시장에 진출해 식사, 교육, 보안 등 서비스 개발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토지 소유자로부터 땅을 장기로 빌려 임대주택을 짓고 입주자 모집부터 개보수, 월세 회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땅 주인이나 부동산투자자들이 임대수익을 얻기 위해 주택업체에 시공 등을 맡기는 임대주택 사업은 지주와 투자자, 회사가 모두 이익을 내려면 입주율을 95% 이상 끌어올리는 게 관건이다. 다이와하우스는 사물인터넷의 궁국적인 지향점인 로봇은 입주자 모집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한국 건설사는 선분양해 시공을 마치면 철수하는 1차원적 사업에만 그친다는 지적이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도 주택산업을 발전시키고 주거의 질을 높이려면 건설사들이 단순 집 장사에서 벗어나 리모델링, 임대·관리서비스, 컨설팅 등을 융복합하는 쪽으로 사업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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