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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 신드롬②] 제대로 응답한 88학번…“피자? ‘웬열’, 떡볶이가 대세”
입력 2015-12-17 14:53 
[MBN스타 김윤아 기자]​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열풍이 뜨거운 만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끼리 벌이는 ‘고증 설전 역시 뜨겁다.

‘응팔은 1988년도 시대 배경이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지 많은 우려 속에서 출발했지만 이는 기우였다. 케이블 방송 시청 주 연령층은 2030의 젊은 세대로 알려져 있지만, ‘응팔 만큼은 40대가 제대로 응답했고, 지난 달 6일 첫 방송 이후 매회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고증이 아쉽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에 1988년도에 고등학교 2학년(극중 덕선의 나이)이었던 71년생과 대학생 재학 중이던 68년생 사이의 애청자 10명에 설문조사를 벌여 ‘응팔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이를 대담 형식으로 정리해봤다.

◇ 그 때 피자 먹어본 사람 있어요?



A: 많은 부분은 공감을 했지만 이건 다르다 싶었던 장면들도 있었어요. 밥 때 되면 엄마들이 아이들을 부르던 풍경을 보니 88년보다는 좀 더 옛날 느낌이 나더라고요. 우리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쯤 아닐까 싶네요.

B: 저도 그건 동감해요. 마치 작가님들이 상상해서 ‘이랬을 것 같아라는 느낌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최택(박보검 분) 집에서 ‘응팔 친구들이 피자를 먹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우리 때 피자 배달은 감히 꿈도 못 꾸던 시절인데 말이죠. 피자보다는 DJ들이 있던 떡볶이 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었던 기억이 많이 나요.

C: 맞아요. 피자는 정말 먹기 힘든 식품이었고 기껏해야 전기구이 통닭이 그나마 특별한 음식이었어요. 하하. 이태원에 ‘피자인이라고 있긴 했어요. 저도 딱 한번 미국에서 온 친구 때문에 가봤지요. KFC도 있긴 했는데 전 못 가봤고요. 친구 부모님이 패밀리 팩 사오셔서 당시 정말 신기해하며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네요.

D: 제 기억에도 피자 배달은 없었던 것 같아요. 피자 파는 곳은 있었지만 말이에요. 포장도 지금 우리가 아는 피자박스 있잖아요? 그런 포장은 미팔군에서 사오는 것이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뉴욕피자라고 빵이 엄청 두껍고 폭신폭신하고 토핑은 컴비네이션이라고 여러 가지 골고루 들어간 것이 제일 인기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저 같은 경우 집이 종로에서 가깝다보니 종로2가 ‘웬디스에 친구들과 많이 갔어요. 샐러드 가격을 내면 접시를 하나줘요. 샐러드 바에서 엄청나게 많이 ‘탑쌓기로 샐러드를 담아다 먹었습니다.(웃음) 일 하시는 분이 놀랄 정도로요. 제가 담은 건 아니고 친구 증에 이런 거 잘하는 아이들이 있었어요.(웃음)

C : 맞아 맞아! 저도 맥도널드 보다는 웬디스가 기억나네요! 극중 택이는 그럼 친구들 주려고 피자를 사온건가봐요.(웃음)

D : 그러게요! 그리고 저희 나이 때 유행이 외식을 많이 하는 것이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거든요. 그래서 햄버거집이 하나 새로 생기면 우르르 가서 먹었고, 그리고 동네 오래된 빵집들이 한개 정도씩은 있어서, 거기서 미팅도 하고, 생일이면 이층짜리 버터케이크도 사먹었어요.

◇ 덕선이 같은 친구가 있었냐고?



C: 1988년도는 서울 올림픽 개최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타 학교 다니는 친구들 중에 마스게임에 학교가 지정되어 공부도 못하고 매일 연습에 끌려 다녔고, 좀 예쁜 친구 중에 한명은 올림픽 메달 전달하는 것을 학교에서 시켜서 했어요. 올림픽 유니폼인지 정장인지를 입고, 메달 쟁반을 들고 다녔대요. 하기 싫다고 빠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TV에 얼굴이 나오지도 않고. 극중 덕선이처럼 모든 학생들이 올림픽 행사에 참석하고 싶진 않았을 거 에요.

B: 저는 당시 혜화동에 살았는데, 대학로가 조성 된지 얼마 안 된 후였던 것 같아요. 학교서 대학로를 우범지대로 정해놓고 선생님들이 순찰을 돌기도 하셨어요. 그리고 저희 동네에 남중고교가 몇 개 있었는데 웃긴 게 등교시간엔 작은 찻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엔 남자들만 오른쪽 길엔 여자들만 다니게 했다니까요. 혹 왼쪽에 여자애가 들어가거나 오른쪽 길에 남자애가 들어오면 놀리고 밀쳐내곤 했지요. 하지만 하교 길엔 어느 정도 섞여서 다녔어요. 덕선이가 남자친구들이랑 잘 어울리는 거 보면, 나 땐 상상도 못했는데 싶다가도 부럽기도 하더라고요. 하하.

◇ 격변기의 88년, 실상은 더 심했다



A: 드라마에서는 보라가 시위에 참여하고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버지가 회사에 월차까지 내며 이를 지키고 서있죠. 최근 방송에서는 정봉이가 백담사에서 전두환을 만나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잖아요. 이처럼 드라마는 격변기였던 88년을 무겁지 않고 위트있게 녹여내고 있지만 실상은 무시무시했어요. 일상 속에서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B: 저도 성균관대학교 옆에 살아 데모할 때면 눈코입이 넘 매웠던 최루탄을 기억해요. 무서워서 피한다고 해도 꽤 멀리까지 퍼졌던 기억이 나요. 첨엔 멋모르고 씻어낸다고 씻다가 더 아파서 고생했던 기억이 나고요. 그때만 해도 전 고3이라 왜 데모를 하는지 몰랐고, 그냥 불편하기만 했어요.

D: 맞아요. 이 때는 정말 시위를 많이 하고, 일반인들도 시위하거나 대학생들이 연설하고 있으면 참여해서 같이 연설을 듣곤 했었어요. 그때 저도 고등학생이었는데 종로에 나갔다가 시위대에 갇혀서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네요. 그래도 당시 거리 분식집 아주머니들이 분식집 문을 열어주고 거기 들어오게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많고 학생들을 오히려 지지해줬던 것 같아요.

김윤아 기자 younahkim@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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