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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출구없는 아가씨? 에이 저 아저씨에요"
입력 2015-12-11 17:21  | 수정 2015-12-11 17:31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SBS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국내 지상파 드라마로는 유례 없던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장르물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 외에도 많은 수확을 남겼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아가씨' 강필성 역을 연기한 배우 최재웅(36)의 발견이다.
최재웅의 등장은 초반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복장도착증 환자인 '아가씨'는 극 초반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원피스형 드레스에 짙은 화장을 하고 나타나 '마을' 사람들은 물론,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는 언니 김혜진(장희진 분)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쳐가는 한소윤(문근영 분)의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무심한 표정 뒤 감춰진 그의 정체는 무려 9명의 생을 앗아간 연쇄 살인마였다.
수없이 많은 살인을 범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배회하고, 사람을 만나고, 특히나 자신의 행위에 대해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정당성마저 부여하는 점은 전형적인 싸이코패스 형이지만, 흔히 보던 살인마와는 다른 인물임은 분명했다.
"연쇄 살인범 역할이다 보니, 처음에는 답이 정해져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기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살인범 이미지로 연기하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죠."
최근 서울 종로 내자동 한 카페에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최재웅은 자신의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했다. "작가님도 전형성을 피하려 하신 것 같았어요. '무심하게' '순진한 듯' '평범하게' 등의 지문을 대본 안에 넣어주셨는데, 그런 지점이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마을'은 내내 마음 졸이며 봐야 했지만, 아가씨가 등장하는 장면은 평범한 상황에서도 괜히 의심스럽고,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최재웅의 눈빛도 한 몫 했다. 이에 대해 그는 "평소 뚱한 표정을 잘 짓는 편인데, 이 캐릭터와는 잘 어울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히 몰입할 것도 없이, 상황 자체가 대본에 잘 드러나 있었어요. 특히 장르물 같은 경우, 대본도 그렇고, 감독님이나 조명, 음악, 촬영 등 모든 면에서 도움 받는 부분이 많다 보니 오히려 연기는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상황 자체가, 저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만들어줘서요.(웃음) 아가씨는 어떤 사람이라고 타인이 묘사하는 장면이 많았잖아요. 제가 특별히 한 건 없네요."
극중 아가씨는 자신이 개발한-정확히 말하면 살인 도구가 된 약물을 '행복해지는 약'이라 칭했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최재웅은 "아가씨는 진짜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며 "대다수 살인마들이 자신의 행동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 않나. 아가씨 역시 자기가 하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16부 내내 쫀쫀한 스토리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 '마을'은 의문의 살인이 남긴 흔적을 통해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렸다. 그러면서도 공동체 내 권력자가 자행한 성범죄와 그에 대해 눈 감는 약자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실제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폭로했다.
"처음엔 우리도 '범인 누구야' 이러면서 갔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 스태프 모두 그게(범인)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간 것이죠. 결국은 (범인이) 남씨 처였다, 인숙이었다 등의 기사가 나오긴 했지만, 오히려 우리들은 그게 아무렇지 않은 것이죠. 누가 범인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으니까요."
'마을'이 범인찾기에 매몰되지 않은 부분은 그가 특히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다. "단순히 '범인이 누구?'로 진행됐다면 별로였을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 문제도 다루고, 중요한 건 범인 찾기가 아니었다는 점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걸 잘 구성하신 작가님이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찌 됐건 '마을'에서 많은 이들이 가장 강렬했다 꼽은 캐릭터는 단연 아가씨였다. "역할 자체가, 매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전형적이지 않게 한 것도 도움이 된 것 같고. 드라마에 대한 평이 좋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아요. 하다 보면 전형적인 살인범의 연기로 빠지는 실수를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 부분도 중간중간 잡아주시고, 대본이 일찍 나오니 연구하고 리허설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 정말 만족스러운 환경이었어요. '마을' 같은 좋은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또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마을'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곧바로 뮤지컬 '오케피'로 무대를 옮겨 관객들을 만난다. 사실 '마을' 촬영 중에도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와 '오케피' 연습으로 24시간이 모자란 나날을 보낸 그였다.
'연기'가 좋아 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 졸업 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처음 무대에 선 지 어느덧 13년. 이젠 무대와 TV, 스크린을 넘나드는 장르 파괴 '씬스틸러'가 된 최재웅은 현재의 삶에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
"만족이 아니라, 감사하죠. 이렇게 계속 활동할 수 있음이 감사한 일이에요.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연습도 많이 해왔고, 계속 꾸준히 해왔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제일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죠."
배우 최재웅의 행복. 인간 최재웅, 그리고 아가씨의 행복도 궁금했다.
"저는 그냥 기본적으로 현재가 즐겁고, 공연이나 드라마나 영화나, 계속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배우로서도 마찬가지고요. 비슷한 캐릭터를 줄곧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배우로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요.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음이 감사해요. 그런데 아가씨는 음... 뭔가 이상한 놈이라. 어쨌든 아가씨는 분명 나쁜 놈이지만 지겹게 하는 말이 '행복' '행복해지는 것'이었죠. 끝날 때까지도 행복을 논했고요. 촬영하면서도 배우들끼리 '그놈의 행복이 뭐라고'라며 농담하고 했는데, 행복해지려 하는 게 아가씨였네요. 그러고보니 모두 다 행복하려고 사는 것 같아요. 저 개인 역시 가족,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고, 배우로서도 좋은 의도인데, 아가씨는 나쁜 의도네요.(웃음)"
'출구가 없는 배우'라는 평에 "아니에요. 아저씨인데"라며 손사래치는 최재웅. 어디선가 본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있어도, 알면서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댓글이 꼭 맞는 듯 하다.
psyon@mk.co.kr/사진 장인엔터테인먼트[ⓒ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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