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우디, ‘선거 출마 금녀의 벽’ 허물었지만 평등선거까지는 먼길
입력 2015-12-11 15:37 

이슬람권에서 여성인권은 그동안 ‘볼모지나 다름없었다. 세계역사에서 여성인권을 재는 척도는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하고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참정권 확보가 이뤄졌는지 여부였다. 지난 1893년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지 122년만인 지난 12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지방선거에도 첫 여성 후보자들이 출마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아랍권 여성 참정권을 배제해왔던 중동의 ‘맹주 사우디의 변화에 전세계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AP에 따르면 사우디 지방선거에 출마한 여성 후보자는 979명이다. 총 전체 2100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모두 6917명이 입후보해 여성 후보자 비율은 14.2% 수준이다. 사우디의 여성 참정권 보장은 2011년 압둘라 전 국왕의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 2011년 9월 국왕 최고 자문기구인 슈라위원회 연례 연설에서 국왕은 2015년부터 여성이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압둘라 전 국왕 연설 후 사우디는 2013년 슈라 위원회 설립 규정중 2개 조항을 개정해 전체 150명 위원 가운데 20%를 여성에 할당하도록 하고 여성 위원 30명을 새로 임명했다. 임명된 여성 위원들은 각 상임위원회 활동에 참여하는 한편 남성 위원과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사우디는 와하비즘이라는 엄격한 이슬람 규율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허용하지 않아 왔다. 차도르로 전신을 감싸고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살아가는 사우디 여성들에게 현실 정치 참여는 언감생심이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우디가 이번에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긴 했지만, 여전히 여성들을 옭아매는 구습을 곳곳에 숨겨놓고 있어 와하비즘의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 여성 입후보자들은 남성 후보에 비해 많은 제약을 안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여성 후보는 남성 유권자들이 참석하는 곳에서는 유세를 할 수 없고 남성 유권자나 언론은 여성 후보 측 남성 대변인을 통해서만 여성 후보와 소통할 수 있다. 남성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세는 모니터로만 가능하고 방송 연설도 할 수 없다. 또 선거 포스터에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쓸 수 없다. 모스크(이슬람 사원)와 같은 공중 시설에서는 여성후보들의 선거 운동을 금지했다. 상대 후보를 비방하거나 지역·부족·종파간 갈등을 조장하는 여성 후보는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 심지어 3명의 여성 후보자들은 운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입후보자 명단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사우디의 여성참정권 허용이 실효성이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2000년대 들어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다른 중동 국가들의 경우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도 당시 여성들이 선거에 뛰어들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도 ‘이슬람 율법아래에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지금의 사우디와 유사한 모습이다. 때문에 이들 국가에서 여권신장은 여전히 먼 얘기다. 2005년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쿠웨이트의 경우, 여성 국회의원은 10년이 지난 시점에 단 한명이다. 이제 막 여권 신장의 문을 연 사우디의 사정은 더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선거 여성 입후보자 비율이나 유권자 등록 비율만 봐도 사우디의 여성 참정권은 아직까지 형식적이라는 지적이다. 여성유권자는 13만1000명정도로 남성 유권자(135만명)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선거 당국이 여성 참정권 보장 사실을 제대로 홍보하지 않는 등 현실적 제약이 있는데다 이슬람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 차별 문화가 여성유권자의 낮은 참여율 원인으로 지적된다.
사우디가 형식적이나마 여성 참정권을 허용한것은 왕가 권력다툼과 각종 외교정책 실기를 무마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지속적인 유가 하락으로 국가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권탄압 대명사인 ‘명예살인 등으로 미국 등 서방의 비판을 무마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럼에도 여성들 사이의 ‘풀뿌리 인권찾기 운동은 ‘제2의 아랍의 봄을 연상케 한다. 여성들은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고 호텔과 같은 실내에서 여성 유권자들을 모아 공약을 설명하는 등 가능한 범위에서 열정적으로 유세에 나서고 있다..
[문수인 기자 / 장원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