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주승용 의원의 별명은 ‘승용불패다. 호남에서 무소속으로 두 번의 도의원과 두 번의 여수시장(한 번은 여천군수)에 당선됐던 경력에서 붙은 별명이다.
1996년 여천군수 보궐선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여천을 방문해 상대후보를 지원했음에도 주 의원은 자력으로 당선됐다. 세 번의 국회의원 당선도 당보다는 개인의 득표력 덕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주 의원은 여수가 고향도 아니다. 여수에서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광주에서 초등·중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럼에도 7번의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지역에서는 ‘선거의 달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달 8일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한 주 의원은 이미 지난 11월 말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만간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었다. 당시 주 의원이 밝힌 사퇴 이유는 이렇다.
문재인 대표를 이해할 수 없다. 도와주려고 해도 도와줄 수가 없는 행동을 보여 어찌할 수가 없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전혀 최고위원들과 사전에 논의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도와주나. 가령 ‘문·안·박연대도 사전에 논의하지 않았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문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전직 당 대표들(김한길·안철수·이해찬·손학규)과 공동으로 통합지도부를 구성해 당을 쇄신해야 한다. 지난 4월 재보선이후 호남민심이 문 대표를 떠났으니 이런 방안이라도 선택해 당을 재건해야 한다. 번번이 최고위원들을 무시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다.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하려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다. 솔직히 문 대표에 대해 쓴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
주 의원은 문 대표의 지난 18일 조선대 발언과 관련해 ‘이런 분들은 공천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사과를 요구했는데 일주일이 넘도록 단 한마디 사과가 없다”며 저를 비롯한 호남 출신 의원들이 공천이나 지역패권 관련 기득권이라도 주도하려는 양 매도한 것에 대해 반드시 당대표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만나 본 주 의원은 상당한 결기가 있어 보였다. 그 점은 여수경찰서장 출신이었던 선친을 닮았다고 한다. 5·16 군사정변 직후 광주를 접수한 군인들이 경찰서장으로 있던 선친에게 주민들의 생계 수단인 포장마차를 1주일 내 전면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선친은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옷을 벗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주 의원의 정치적 미래를 무엇일까. 호남의 맹주가 될 수 있을까. 결기만 가지고는 맹주가 될 수 없다. 정치적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정치력으로 돌파해야 한다.
전당대회 최고위원경선에서 최다득표로 선출된 주 의원이 스스로 당내 서열 2위인 최고위원직을 내던진 것은 지도자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 것이다. 지도부에 남아 당당하게 문 대표와 맞서 당을 혁신하는 구당(救黨)의 길을 가는 것이 지도자의 자세일 것이다. 최고위원직을 던졌으면 탈당을 해야지 그냥 당에 남아 있는 것도 모양이 우습다.
주 의원은 당내 서열 2위로 현 야당내에서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한명이었다. 그런 위상에 있었으면 문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고 투쟁을 벌였어야 했다. 안철수 의원과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밀려 비주류의 창구 역할을 맡은 것은 정치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주 의원은 전남 고흥군 고흥읍 남계리에서 ‘운암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경찰서장 출신 선친으로부터 엄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대학(성균관대 전자공학과) 졸업 후 선친의 고향 여수에서 사업에 성공해 많은 기반을 닦았다고 한다. 자녀들도 모두 여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시켰다. 여천군수 시절 ‘여수엑스포 개최도 처음 제안했다. 따라서 내년 20대 총선에서 여수에 출마해 당선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런 좋은 배경을 가진 주 의원인 만큼 정치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는 시선이 많다. 누구 이야기를 듣고 움직이는 행보 대신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메시지, 자신의 진정성을 진솔하게 드러내야 정치적 미래가 열린다.
호남민심의 핵심은 야성(野性)의 회복이다. 언제 주 의원이 정부여당의 잘못을 제대로 질타한 적이 있었나. 국회 정론관에서 마이크만 잡으면 당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던가. 호남 맹주 자리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호남 사람들만 인정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호남맹주감이라고 인정해야 가능하다. 주승용 의원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전 MBN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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