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장 윌리엄 켄트리지의 개인전 “영감있으면 모든 소재가 예술”
입력 2015-12-03 16:14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 1층엔 온갖 소리들로 시끌시끌하다. 흡사 공연장 느낌이 물씬 난다. 독일 작가 율리어스 포프의 전시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세계적 거장 윌리엄 켄트리지(60) 개인전 ‘주변의 고찰전이 동시에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율리어스 포프는 컨테이너 박스 네개를 설치했다. 각각의 컨테이너에서 실제로 물이 쏟아져 나오며 글자를 만들었다가 사라진다. 철썩”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시종일관 귓가를 울린다.
복도와 전시장 2,3,4 전시실에는 아프리카 전통음악과 모짜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등 장중한 음악들의 선율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목탄 드로잉을 직접 그린 뒤 이를 사진으로 일일이 찍어 흑백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켄트리지 개인전 풍경이다. 애니메이션에 쓰인 거대한 목탄 드로잉들과 철판을 자른 부조 ‘얼굴들이 벽에 걸려 있다.
전시장은 국내 미술관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날 것 그대로의 거친 느낌을 살렸다. 마치 작가의 작업실에 온 듯한 기분이다. 최근 방한한 켄트리지는 작업실은 바깥 세상을 끌어들여와 작가가 의미를 배열하고, 재구성하고, 편집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만든 결과물을 세상에 다시 내보낸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작가의 작업 과정과 다르지 않다. 세상을 각자 인식하고 판단한 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전시장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2012년 독일 카셀도큐멘타에서 처음 선보인 ‘시간의 거부. 영국의 그리니치 표준시가 상징하는 서구 문명과 표준에 대한 거부를 이야기하는 이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서울관은 제2전시실 한 방을 통째로 할애했다. 벽에는 나무 보드가, 바닥에는 작품을 운송하는 나무 크레이트가 막 도착한 듯이 설치돼 있다. 영상은 벽을 타고 흐르고, 아프리카 민중들의 묵직한 사운드가 방에서 울려퍼진다.
남아공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난 켄트리지에게 남아공의 정치현실은 외면하기 어려웠다. 남아공은 1940년대 말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로 인해 흑인과 백인이 결혼할 수 없고, 흑인 등 유색인종은 백인과 섞이지 않게 따로 특정 지역에 거주해야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아래서는 부조리와 모순을 안 느낄 수가 없었어요. 정치적 상황이 매우 강렬했기 때문에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죠.” 이 슬픔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그는 책을 뜯어내 그 위에 목탄으로 쓱쓱 드로잉을 한다. 목탄은 선을 그은 다음에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게 가능하죠. 우리 삶의 불확실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주제는 묵직하지만 감성적이고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직접 오페라 연출을 할 정도로 조각, 설치, 미디어, 공연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제 예술의 뿌리는 100년 다다이즘(기성의 권위 도덕 형식 등을 거부하는 운동)이에요. 그들의 투쟁 덕분에 많은 작가들이 혜택을 받고 있어요. 현대미술에 언어와 텍스트가 등장했고 사운드, 설치가 가능해졌죠.”
그는 아트는 영감이나 아이디어만 있어서는 안된다. 물질이나 소재와 폭발적으로 접촉이 있거나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종학살 사건을 미니어처 극장에 담은 ‘블랙박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인 ‘나는 내가 아니고, 그 말은 내 것이 아니다, 중국 문화혁명을 소재로 이상적 유토피아주의를 다룬 ‘양판희에 대한 메모 등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켄트리지의 25년 작업을 108점으로 총망라한 이번 전시는 작가의 아시아 최대 규모 개인전일 뿐더러 서울관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 규모로도 최대다. 내년 3월27일까지. (02)3701-9500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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