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회사원 돈모아 16년간 펀드 하나만 굴려
입력 2015-11-27 15:52  | 수정 2015-11-27 16:39
"아베노믹스 때문에 먹고사는 기업엔 투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책 도움 없이도 독자 생존 능력을 가진 우량주를 선별해 장기투자하는 것만이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입니다."
'일본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사와카미 아쓰토 사와카미투자신탁 회장(69·사진)이 일본처럼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 투자자들에게 던진 조언이다. 사와카미 회장은 최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본사에서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하면서 "좋은 기업들에 장기 운용자금을 흘러가게 하고 투자자들에게 저금리를 이겨낼 수 있는 안정적 수익을 제고하는 게 사와카미투신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사와카미투신은 일본 자산운용 업계에서도 가장 특색 있는 운용사로 손꼽힌다. 스위스 최대 민간 은행인 픽텟(Pictet)의 일본법인 대표로 17년간 일했던 사와카미 회장은 지난 1999년 8월 독립계 자산운용사인 사와카미투신을 세웠다. 이 회사의 '사와카미펀드' 설정액은 지난 10월 말 기준 2960억엔(약 2조7777억원)으로 단일 펀드로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크다.
사와카미투신은 오직 월급쟁이(샐러리맨)만을 상대로 적립식 펀드를 직접 판매한다. 일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펀드 판매는 주로 증권사나 은행이 맡고 있다. 문제는 판매사가 끼면 판매보수를 연 1% 안팎 떼어가지만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해주는 서비스는 없다는 점. 사와카미투신은 직판을 하기 때문에 별도의 판매보수를 받지 않고 운용보수만 연 1%가량 받을 뿐이다.
기관 자금을 받지 않고 적립식으로만 펀드를 판매하는 이유는 장기투자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와카미 회장은 "기업이나 대학 등 기관에서 투자하는 자금은 1~2년 단기간에 높은 운용 성과를 올리는 게 목적"이라며 "목돈 마련이나 노후 준비를 목적으로 하는 30대 전후 샐러리맨 자금을 받아야 10년 이상 장기적 관점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회사 펀드 고객들의 평균 투자 기간은 12년에 달한다.

펀드 숫자도 '사와카미펀드' 단 하나뿐이다. 운용사의 모든 역량을 단 하나의 펀드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다. 사와카미펀드의 성과는 눈부시다. 설정 이후 누적 수익률이 120%로 복리 기준 연 5% 수익률을 꾸준히 달성했다. 펀드가 처음 설정된 1999년 일본 닛케이지수가 1만7000이었고 현재도 2만에 미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투자 성과다.
일본에는 총 5300개 펀드가 있고 노무라자산운용을 비롯해 대형 운용사들이 회사별로 수백 개씩 펀드를 운용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가계 자산 규모가 일본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3000여 개 펀드가 난립해 있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설정액 50억원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 펀드로 전락해 운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국 펀드 시장에도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다.
일본의 워런 버핏이란 수식어가 나타내듯 주요 투자 전략은 기업의 본질가치(펀더멘털) 대비 저평가된 우량주를 저가매수하는 것이다. 도요타(자동차), 고마쓰(중장비), 브리지스톤(타이어)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일본 대표 기업들이 사와카미펀드의 주요 보유 종목이다.
사와카미 회장은 "2010년 도요타 리콜 사태 때 투자해 5년 만에 400% 수익을 올렸다"고 자랑했다. 중소형주는 단기적으로 많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지만 변동성이 심해 선호하지 않는다. 전체 103개 투자 종목 가운데 대형주 비중이 85%, 중소형주는 15%다.
사와카미 회장은 한국도 고령화와 저금리로 이제 장기투자 세계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사와카미와 비슷한 투자철학을 가진 자산운용사로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을 꼽았다. 그는 "강방천 에셋플러스 회장을 알고 지낸 지 8년 정도 됐다"면서 "한국에서도 사와카미와 같은 소수 펀드, 장기 가치투자 철학을 가진 운용사들이 더 많이 생겨 고령화를 맞이하는 투자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 = 최재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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