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해마다 15조원 쏟아붓는 깨진 독` 한국의 수출진흥 정책
입력 2015-11-26 16:31 

#1. 최근 을씨년스러운 날씨 속에 찾아간 울산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한 업체. 선박구조물을 생산하는 공장 문에는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고 인적이라곤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비원 뿐이었다. 이 공장은 생산물량을 계속 줄여오다 두 달 전부터는 아예 가동을 멈췄다. 최찬호 울산상공회의소 경제총괄본부장은 협력업체들 줄도산이 이미 시작됐다”며 한 마디로 최악”이라고 표현했다. 퇴근 시간 무렵에 찾은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인근 식당 대부분은 손님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곳에서 참치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동구에서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된다”며 매출은 예년의 3분의 1 정도”라고 말했다.

#2 지난 2000년 아이러브스쿨은 전국민을 동창회 열풍으로 몰아넣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사이트의 문을 연 지 9개월 만에 회원 수는 3백만 명을 넘어섰고, 당시 매일 6만 여명에 가까운 신규 회원을 유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시장에만 머물다 보니 성장에 한계가 왔고, 이제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는 상태다. 그 자리는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이 대체하고 있다. 정부내 한 정책 전문가는 아이러브스쿨이 기획단계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추진했다면 판도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미래를 내다본 산업정책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1970년대 수출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산업정책의 관성은 현재까지 근 반세기 동안 계속됐다. 정부는 반도체, 철강, 조선, 화학 등 10대 주력 수출품목 육성에 주력하는 산업정책에 올인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수출 대비 10대 수출 산업의 비중은 1980년 55.9%에서 1990년 67.5%, 2000년 78.1%에서 지난해엔 86.3%까지 계속 높아졌다.
그 결과 10대 산업에 속한 대기업들은 세계로 뻗어가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정작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미래성장동력이 될 글로벌 중소기업·벤처기업 육성과 새로운 서비스업 창출은 뒷전으로 밀려버렸다는 사실이다. 타성에 젖은 채 수십년째 변하지 않던 산업정책이 이제 한국경제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조선, 철강, 화학 등 주력 업종이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자 전체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8년부터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제조업 분야를 집중육성하는 ‘10대 산업 진흥계획에 올인해왔다. 조선업이 대표적이다. 한국 조선산업은 이미 지난 2000년에 세계수출시장을 21.2% 점유했고 당시 중국은 4.2%에 그쳤다. 그러나 불과 10여년 지난 2012년에 중국은 시장을 26.7%까지 급격히 잠식하면서 한국(26.0%)을 앞질렀다.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한 발빠른 산업 재편이 이뤄지지 못한 게 오늘날 한국 경제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진단이다.
한중간 기술격차도 이젠 큰 차이가 없다. 한국과 중국의 국가전략기술 격차는 2012년 1.9년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4년으로 줄었다. 중국은 오히려 올해 5월 항공우주, 로봇, 신소재 등 첨단 산업분야를 2025년까지 독일과 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제조 2025 계획을 발표하며 야심차게 기술보국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잃어버린 20년 동안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했던 일본은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국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 권장하는 한편, 자국내 산업은 우주, 항공 등 고부가가치 첨단 제조업과 산업지원 서비스업으로 재편하고 있다.
김주훈 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반도체산업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주력업종은 글로벌 공급과잉과 범용제품 위주로 구성돼 있어 경쟁력이 취약한 상황”이라며 새로운 산업정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중국에 추월당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산업경쟁력이 약화되고 장기간 침체됐던 모습을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중국의 추격이 바짝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한국의 미래 먹거리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세계경기가 다시 회복세로 바뀌더라도 한국 수출은 다시 늘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최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수출이 늘고 있지만 아직 주력수출품인 액정표시장치(LCD)를 대체하기는 이르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주목받은 화장품 산업도 아직 대한민국 대표상품이 되기에는 수출금액이 적다.
김도훈 산업연구원 원장은 주력산업분야에서 이미 가진 것을 지키려는 방어적인 자세로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 경제는 옛날에 우리가 자랑했던 다이내믹(dynamic·역동적인) 코리아에서 어딘지 모르게 스태틱(static·정체된) 코리아로 바뀌고있고, 여기에 우리나라 경제 위기의 원인이 잠재해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글로벌화가 가속화하면서 해외현지에 공장을 짓는 경우가 늘면서 수출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매출이 대중국 수출액을 앞지르는 게 단적인 예다. 이제는 대한민국 산업정책의 근간을 바꿔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돈을 더 잘 벌 수 있도록 지원하고, 벌어들인 돈을 국내에 들여와 서비스업과 연구개발(R&D) 등을 새로운 먹거리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는 이유다. 특히 중국의 내수활성화 정책을 기회로 활용해 한국의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고 중국 소비재 시장 진출을 확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정부의 기업 지원과 육성 정책은 아직도 한국에 있는 기업들에만 머물고 있다. 김도훈 원장은 새로운 산업, 새로운 정책의 등장이 필요하다”며 새롭게 투자하고 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 = 서동철 기자 / 울산 = 장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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