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중일 밸류체인 붕괴` 고리타분 산업정책으론 앉아서 죽는다
입력 2015-11-26 16:11 

# 글로벌 국내 대기업 1차 협력업체인 A사는 최근 납품 대기업의 베트남 공장 신설 계획에 맞춰 현지 진출을 준비하다 벽에 부딛혔다. 2000년대 초반 중국에 첫 진출할 때는 대기업에서 동반 진출하자며 적극 도와줬지만 이번엔 태도가 달라졌다.
A사 김 모 대표는 예전엔 무조건 같이 해외에 나가자고 설득하던 납품 대기업이 이제는 해외 현지에서 부품 조달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오고 싶으면 오라는 입장으로 돌변했다”라며 한국에 머물러 있자니 일감이 줄고 그렇다고 해외 진출하자니 중소기업이 홀로 외국 정부와 은행을 상대하기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한국, 중국, 일본 산업계에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공급망(supply chain) 구조가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다. 일본에서 첨단부품과 소재를 수입해 한국기업들이 부품 모듈을 만들고 이를 노동력이 싼 중국에서 조립해 해외로 수출하는 게 기존 한·중·일 산업 생태계였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 정부는 2010년 부품 산업 집중 육성 전략에 따라 ‘차이나 인사이드(China Inside) 정책을 무섭게 밀어붙였다. 최근 그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부품·소재 분야에서 최고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다수 한국 중소기업들이 ‘일본에 치이고, 중국에 쫓기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일본과 한국 기술 격차는 고작 0.3년 줄어드는 데 그쳤다. 반면 한국과 중국 격차는 0.5년이나 줄었다. 특히 해외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이 현지기업들로부터 부품 조달을 빠르게 늘리면서 2000년대 제조업 활황의 기반이 됐던 한국 대기업·중소기업간 동반 성장 구도마저 금이 가고 있다.
대기업들이 제품 생산 공장을 베트남과 인도 등 제3국으로 옮기는 가운데 납품을 위해 현지 진출해야 하는 한국 중소기업들 입장에선 현지 업체와의 경쟁은 물론 자금조달부터 인허가까지 모두 홀로 개척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한 셈이다.
한·중·일간 분업구조가 확 바뀌던 지난 3~4년동안 한국 정부는 해마다 15조원에 달하는 산업 진흥예산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과거 수십년간 유지해왔던 조선, 석유화학 등 10대 주력 품목 위주의 수출 진흥 정책을 답습해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26일 한국에선 최근 몇년간 제대로 된 산업정책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일본은 우리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7월 일본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의 글로벌시장 개척을 돕기 위해 인재확보와 제품개발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글로벌 중견기업 육성정책을 발표했다.
중소기업 강국 독일도 산업정책을 새롭게 짜고 있다. 독일 자국내 생산설비들의 경우 스마트 공장 등 제조업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설계·디자인·마케팅 등 제조업과 연계된 서비스업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대신 경쟁이 심화되는 범용 제품들은 해외 진출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김주훈 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해외 진출 기업들이 현지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이 돈이 국내로 흘러들어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산업정책을 재편해야 한다”며 국내 생산거점은 서비스와 엔지니어링 중심으로 고도화하는 형태로 바꿔야한다”고 지적했다.
[조시영 기자 /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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