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공론화 과정없이 강행한 입법이 뒤늦게 문제를 일으킨 사례는 많다. 산업현실에 대한 면밀한 분석없이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후폭풍에 휩싸이자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이들 법안의 공통점이다. ‘아니면 말고식 입법이었던 셈이다.
5년 주기로 재승인되는 면세점 특허 제도가 가장 대표적이다. 2012년 11월 홍종학 당시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14명은 면세점 특허기간을 5년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여당의 반대가 있었지만, 대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가 꾸준히 제기되던 시점이어서 국회 통과에 큰 난관은 없었다.
관세법 개정안은 이듬해 10월부터 시행됐다. 시행 초기에는 단독으로 특허를 신청한 기업들이 특허권을 얻기도 했지만, 점차 기업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점입가경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작용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그 때부터다.
지난 7월 시내 면세점에 대한 신규면허와 갱신 면허에 대한 심사 당시에는 사전 정보유출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급기야 이달 열린 심사에서는 별다른 과오가 없었던 롯데 월드타워점과 SK 워커힐점이 재승인을 받는 데 실패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들 면세점이 사업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사에서 탈락하면서 앞으로 기업들의 면세점 투자가 위축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국회에서는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특허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다시 환원하는 방안을 담은 관세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제도 시행 2년만에 다시 원상복귀를 논의하는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또한 비슷한 사례다. 국민의 통신비를 절감한다는 명목하에 2014년 5월 국회를 통과했다.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 여야의원 중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었다.
하지만 그해 10월 1일 시행 직후부터 부작용이 속출했다. 단통법으로 단말기 지원금 규모는 크게 축소됐지만, 휴대폰 출고가 인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변칙적 영업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리점·판매점에 주는 판매장려금을 늘리는 등 변칙적 영업이 더 음성화됐다. 반대로 이동통신사들은 마케팅비용을 절감해 영업이익을 크게 확대했다. 단말기 유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최근 1년새 1000여개에 달하는 휴대폰 판매점이 폐업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지난 20일 시행 1년을 맞은 ‘개정 도서정가제 또한 시장의 반발을 사고 있는 법안이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책값의 과열인하 경쟁으로 출판시장이 위축되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로 가격할인에 제한을 둔 제도다.
도서정가제는 2003년 2월 처음 시행됐고, 당시에는 출간 1년 이내 신간을 제외한 모든 도서를 온라인 서점에서 자유롭게 할인률을 정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7년 10월에는 신간의 범위를 18개월 이내의 책으로 변경하도록 개정했고, 이후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신간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도서의 할인율을 최대 10%로 제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큰 논란없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출판업계는 도서정가제로 매출액이 급격히 축소됐으며, 책을 구입하는 소비자들도 도서구입을 줄이는 역풍이 발생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114개 출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71.1%인 81개사가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매출액이 하락했다고 응답했다. 이에 법안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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