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全·盧 비자금 잡은 YS 금융실명제...차남 현철씨 `발목` 잡기도
입력 2015-11-22 16:32 

드디어 우리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합니다.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뤄집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는 이 땅의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습니다. 정치와 경제의 검은 유착을 근원적으로 단절할 수가 없습니다”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45분. 긴급 국무회의를 마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전격 발표했다.
이후 ‘긴급 재정경제 명령 제16호가 발동돼 당일 오후 8시를 기해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을 위한 법률이 전격 시행됐다.
모든 금융 거래를 실명으로 해야 하고, 비실명으로 거래한 금융자산의 소유자는 2개월내에 실명으로 전환해야 하며, 5000만원까지는 자금 출처 조사가 면제됐다.
‘개발시대 유산 인 자본편중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도입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경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건 것이었다.

금융실명제 도입은 5공화국 시절 장영자씨 어음 사기사건으로 금융실명제 실시 주장이 제기된 이후 11년 만이었다. 금융거래 정상화와 합리적 과세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로, 사금융 등 음성적 금융거래를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발표는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의 핵심부에서도 극소수만이 사전에 알았고, 철통보안속에 준비가 진행됐다. 담당 공무원 20여명이 과천 시내 한 아파트에서 합숙작업을 하며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는 금융실명제는 이전 대통령들이 공약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제도였다”며 공직자 재산 등록 등 경제와 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등 ‘클린 거버먼트(clean government, 깨끗한 정부)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금융실명제는 금융관행을 일거에 뒤바꿔놓았다. 예금통장을 만들려면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내보이고 실명확인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가명계좌를 만드는 관행은 불법행위로 간주돼 철퇴를 맞았다.
금융실명제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실명제 때문에 뇌물과 범죄자금 등 검은 돈을 감추기가 어려워졌다. 묻힐 뻔 했던 대형 비리사건이 실명제 때문에 드러나는 일도 빈번해졌다.
금융실명제는 검은 돈 추적에 큰 공을 세웠다. 특히 금융실명제 실시를 미뤘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에 금융실명제 그물에 걸려 구속됐다. 노 전대통령은 야당의원의 비자금 계좌 폭로 이후 일주일 만에 비자금 5000억원 조성 사실을 실토했다. 계좌에 기록이 남아있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던 셈이다.
실명제를 도입했던 김 전 대통령 역시 실명제로 인해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검찰이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구속할 수 있었던 것도 실명제와 계좌추적 때문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대북 송금 사건 역시 계좌추적이 실시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김 전 대통령의 경제개혁 정책은 부동산 거래 실명제로 이어졌다.
1990년 부동산 등기에 대한 특례법으로 탈세나 시세차익을 노린 명의신탁을 처벌하는 조항이 마련됐지만 실질적인 단속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1993년 금융실명제법 도입으로 부동산에 자금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투기를 막기 위한 부동산 실명제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된 터였다.
1995년 1월 6일 부동산 실명제 실시 계획이 발표됐다. 입법 절차는 3주 만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토지의 종합과세를 위해 도입된 부동산 실명제는 부동산 탈세와 투기 방지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다만 시행 20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연간 수백명이 자신 명의의 부동산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등기했다가 적발돼, 과징금을 부과받고 형사재판에도 넘겨지고 있다.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은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도 단골 이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신경제 100일 계획과 규제개혁안을 발표하고 정부조직 개편, 금융개혁 등을 단행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군사작전 같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전격적이었고 획기적이었다.
한승수 전 경제부총리는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정치, 군, 경제분야 등 국가전반의 개혁과 투명성 확보가 경제개혁과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했으나 누적되어 온 경제구조문제를 재임 중에 모두 해결하지는 못하셨다”고 말했다.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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