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YS-박정희 평생 맞수로
입력 2015-11-22 16:31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48년 제헌국회가 개헌한 이후 국회 역사에서 사상 처음으로 제명된 의원이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정권 시절 김 전 대통령은 그해 9월 미국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민주화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라”고 요구했다.
유신정권 지지 기반이었던 공화당과 유신정우회는 당시 야당(신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을 이유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제명안을 단독 처리했다. 헌정 사상 첫 국회의원 제명으로 의원 자격을 상실한 김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되는 처지에 놓였다. 제명 당시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는 말은 민주화를 향한 그의 열망을 잘 보여준다.
김 전 대통령의 의원직 제명은 유신정권의 종지부를 찍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전 대통령이 제명당하고 가택연금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에 부산과 마산 등 경남 지역 민심이 들끓었다. 그해 10월 ‘부마항쟁이 벌어지고 같은 달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암살당하면 유신 체제가 막을 내렸다.
사상 첫 국회의원 제명이 보여주듯 김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철저하게 대립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동지에서 적이었다면 박 전 대통령은 정치 생명을 걸고 맞붙었던 맞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 당시 많은 정치인들이 뿔뿔이 흩어졌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김 전 대통령은 서울로 향했다. 1963년 3월 박 전 대통령이 군정 연장을 발표하자 이를 반대하는 데모에 참여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많은 당시 야당 의원들처럼 박 전 대통령과 대립하던 김 전 대통령이 ‘정적 1순위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 1969년 6월 20일 ‘초산 테러 사건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이 탔던 차량에 흑색작업복을 입은 청년 3명이 초산병을 주머니에서 꺼내 차량에 던졌고, 차량 페인트 일부가 녹아내렸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3선 개헌 추진을 반대하며 박정희 정권과 극심하게 대립했다. 범행의 배후는 중앙정보부로 추정되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했을 때 미국에 머물던 김 전 대통령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국했다. 귀국한 김 전 대통령은 김포공항에서 대기하던 청년들에게 끌려가 한동안 연금 상태에 놓였고 연금이 풀린 뒤에는 한동안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마스크를 착용한 이유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정치는 갔다. 이런 판국에 어떻게 국민들 앞에 얼굴을 다니냐”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투쟁을 이어갔다.
마지막은 ‘용서였다.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강성재 전 의원의 저서 ‘김영삼의 운명과 대권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서거 수 주위의 만류에도 청와대에 설치된 빈소를 찾아 하나님도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인간 박정희에 대한 용서와는 별개로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고,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DJ 정권 당시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5월 서울 수유동 4·19 국립묘지를 참배한 자리에서 퇴임 후 처음으로 시국 성명을 발표하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남았으며 결코 미화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부총재를 맡았던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하면 옳다고 주장하고 남이 하는 것은 부정하는 반사회적 성격의 인물이 다시는 정치 지도자가 돼서는 안된다”며 YS에 직격탄을 날렸다.
YS와 박근혜 대통령이 불편한 관계는 2012년 절정에 달했다. YS의 차남 김현철씨는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경남 거제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탈락했다. 이에 YS는 격분했고 김현철은 새누리당에서 탈당하며 박 대통령을 겨냥해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무자비한 정치 보복이자 테러”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에 찬 발언은 2012년 계속됐다. YS는 그해 7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을 겨냥해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그래도 마지막 만큼은 화해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18대 대선 직전 YS는 당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박 대통령 지지 의사를 밝혔고, 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 YS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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