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자사주 매입해도 주주는 `시큰둥` 왜
입력 2015-11-18 17:35 
'자사주 매입=주가 상승'이라는 증시의 오랜 공식이 깨지고 있다. 자사주 매입 공시가 워낙 잦아지기도 했거니와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시작된 자사주 매입이 매입 후 소각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우호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권 보호 등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상 자사주 매입은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를 줄여주므로 단기적으론 주가에 호재로 작용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해주기 위해서는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이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회사를 뺀 주주들의 지분율이 자동으로 높아져 주당배당액도 따라서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경제가 한국거래소에 요청해 분석한 결과 2012년 이후 공시된 168건의 자사주 매입 중 자사주 소각까지 이어진 사례는 21건(12.5%)에 불과했다. 나머지 87.5%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을 뿐 실제로 소각까지 하지 않아 주주에게 충분한 이익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연말을 맞아 기업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 반응이 차가운 경우도 적지 않다. 자사주 매입이 순수하게 주주환원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자사주 매입 공시를 오히려 매도 타이밍으로 인식하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이현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외국인이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한 11번의 시기 중 7번이나 순매도로 대응한 바 있다"며 "자사주 매입 공시가 나왔을 때 외국인 매매 패턴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 계열사들은 최근 대대적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섰지만 주가흐름은 썩 좋지 않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1월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생명은 4.1%, 삼성증권은 8.9% 각각 하락했다.
자사주를 주주환원 이외 용도로 사용한 예로는 지난 6월 삼성물산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KCC에 보유 중이던 자사주를 넘긴 일이 꼽힌다. 당시 제일모직과 합병을 추진하던 삼성물산은 합병에 찬성하는 주주들을 모으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합병에 반대하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장에 상당수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동조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삼성물산은 보유 중이던 자사주를 우호세력 KCC에 넘기는 강수를 뒀다. 결국 지난 7월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자사주가 오너 경영권 방어용으로 전용되는 나쁜 전례를 남겼다는 평가다.
또 자사주는 회사의 인적분할을 용이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평상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회사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되는 경우 의결권이 부활해 사업회사에 대한 지주회사의 지배력 강화로 이어진다.
김영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30대 그룹 오너 일가의 주식자산 승계율은 41.7%에 불과하다"며 "지금처럼 자사주가 활용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향후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그룹사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예경 기자 / 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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