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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한민국에서 이병헌으로 산다는 것
입력 2015-11-17 13:24  | 수정 2015-11-20 17:54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배우 이병헌(44). 대한민국에서 이병헌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일일까.
롤러코스터도 이런 롤러코스터가 없다. 데뷔 후 곧장 톱을 찍더니, 아시아를 아우르는 한류스타가 됐고, 늦지 않게 할리우드로 날아갔다. 20대엔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화려한 시절을 수놓았고, 30대엔 ‘스타와 ‘배우라는 양날개를 달고 훨훨 날았다.
‘40대 이병헌은 배우로서 정점을 찍는 듯 했다. 어떤 작품, 무슨 캐릭터를 맡겨도 ‘기대 이상의 연기가 나왔고, 평단과 관객의 고른 사랑도 받았더. 억세게 운이 좋았고, 행복했고, 벅찬 영광도 누렸다.
때론 지뢰를 밟거나 덫에 빠져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연기는 그때마다 그를 구출해준 ‘구세주였다. 탈 많고 말 많은 배우인생, 그러나 ‘연기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 이병헌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년 새 터진 스캔들은 매섭고 집요했다. 그럴수록 연기에 더욱 매달렸고, 온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18일 개봉하는 ‘내부자들(우민호 감독)은 ‘배우 이병헌을 다시금 각인시켜 줄 영화다. 극중 대기업 회장과 정치인에게 이용당하다 폐인이 된 정치깡패 ‘안상구 역을 맡아 스크린을 압도한다. 그의 연기는 처절하고 매혹적이다. 한 손으로 게걸스럽게 막는 라면 연기마저도 명장면으로 만든 이병헌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단 시간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단순한 이유다. 가장 먼저 보는 게 재미다. 그리고 ‘내가 이걸 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오는 영화가 있는데, 두 가지가 다 왔다.”
--완성된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걱정했던 것에 비해.(웃음) 사실 고민 많이 했다. ‘와~ 큰일났다 그랬었다. 무슨 얘기하는 지도 모르겠고 지루하단 생각도 들었다. 유머코드도 의도했던 것처럼 안 살고 아쉬운 것들이 많았다. 애초 버전은 3시간 40분짜리였다. 관계자들이 ‘그게 너무 좋다는 거다. 농담처럼 1, 2편으로 나눠가자 했는데, 2시간짜리로 줄여야 하면 문제가 많아진다. 뚝뚝 끊기면 설명 안되는 부분도 있다. 아까운 신들이 많다.”
--전라도 사투리 연기는 힘들지 않았나.
영어보다 쉬울 것 같다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힘들었다.(웃음) 전라도가 고향인 연극 배우 분과 같이 리딩하면서 배웠다. 말할 때도 농담삼아 사투리를 써보기도 했고, 스태프 중 전라도 분이 있어서 대사 할 때마다 그 앞에서 한번씩 해봤다. 100% 완벽하게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감정을 따라가는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해야겠다 싶었다.”
--많이 편집됐다고?
그래서 승우씨랑 나랑 ‘뭐 이렇게 후져 소리만 안 들었으면 했다. 그런데 ‘형, (생각보다) 재밌다고 하더라.”
--배우들의 연기가 그 어떤 화려한 미술장치보다 유려했다.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다. 미술도 현실적이다. 사회성 짙고 사회비리를 고발하는 류의 영화들이 어느 순간부터 많아졌다. 유행인 것 같은데 좋은 일은 아니다. 그만큼 사회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거니까. (이런 영화엔) 처음 출연해봤다. 사투리도 처음이고 만나는 배우들도 이경영 선배님만 빼고 처음 봤다. 딱 한 장면에 나오는 단역분들까지도 ‘어떻게 저렇게 연기할까 깜짝 놀랐다. 자극 받았다.”
--당초 ‘안상구 보다 ‘이강희(백윤식)에 더 매력을 느꼈다면서?
세 캐릭터 중 제일 재미 없다 생각했다. 시나리오엔 유머코드도 없고, 그냥 영화광인 정치깡패다. 말 그대로 깡패.(웃음) 이강희는 매력적이었다. ‘놈놈놈 때도 왠지 좋은 놈이 더 좋아보이고, 이상한 놈이 더 좋아 보이고 그랬다.(웃음)”
--재미없다던 안상구가 가장 화려한 캐릭터로 탄생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질펀하게, 잔인하게,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다. 관객들이 보다가 힘들 수도 있다. 뭐 하나라도 덜 떨어진 캐릭터가 있어야 쉬어갈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안상구 캐릭터에 색깔을 입혀보자 했다. 감독님이 딱 한 가지만 부탁했다. 팔이 잘리고 처음 등장했을 때 안상구의 모습에서 센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서 쓰윽 보여주신 게 ‘케이프 피어(Cape Fear, 1991)의 로버트 드니로 사진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머리가 됐다.(웃음)”
--가발이었나?
뒤에만 붙인 가발이다. 반가발.”
--잔인한 깡패지만 인간미와 유머도 있더라.
워낙 단순한 캐릭터다. 거기에 뭔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여우같은 곰이란 대사처럼 캐릭터를 입혀보고자 했다. 대부분 현장에서 애드리브 하고 새롭게 아이디어 내고 상황 만들고 그랬다. 내가 상상하던 캐릭터만을 생각했다.”
--‘안상구의 색깔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을 꼽는다면
감독님도 좋아한다고 얘기했는데, 왜 망치로 손 내려치는 장면이 있지 않나. 밴에서 내리고 목 베개 끼고 나온 장면. 그 장면이 진짜 안상구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자기가 가진 걸 다 누릴 것 같은 폼생폼사다. 영화광에다가 패션 좋아하고 겉멋든 성향도 있다. 그 목 베개는 내 차에서 갖고온 거다.(웃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하러 가면서도 차에서 유유자적 자는, 왜냐하면 이게 생활이니까. 그에겐 그게 일상이다. 그러다 망치를 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다 다가갈 땐 진짜 무서운 표정으로 돌변하는 그런 사람. 잔인하게 때려죽이는 줄 알았더니 그것이 못이었다는 그런 위트나 여유… 그게 ‘진짜 안상구다.”
--감정 조절에 어려움은 없었나.
그게 고민이긴 했다.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 캐릭터도 그 복수심 하나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밀고 나간다. 되게 우울하고 진짜 복수에 가득 찬 그런 눈빛, 무표정으로 일관됐다. 보통 복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다. 그런데 이 인물(안상구)은 복수가 가장 큰 목표인데 그 과정 속에는 그냥 삶이 보인다.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신나 보이기도 하고. 그런 지점이 과연 관객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싶었다. 어찌 보면 그게 더 현실적이지 않나. 원하는 복수가 1년 후에 이뤄진다면 그 시간동안 ‘복수! 이러고만 있진 않을 거다. 살아야하니까. 그래서 그렇게 내 자신을 설득했다. ‘그래 사람이라는 게 큰 목표를 두더라도 그게 당장 내일하는 복수가 아니라면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 하고. 이렇게 되니까 ‘악마를 보았다가 잘못된 연기 같다. 하하!”
--이병헌이 꼽는 명장면은 뭔가.
근데, 없어졌다.(웃음) 첫 장면이다. 기자회견 가기 직전에 기자 한명을 호텔방으로 불러 독대하는 장면인데 느와르물 ‘대부 같은 느낌이다. 어두컴컴한 데서 얼굴 클로즈업 해놓고 혼자 계속 이야기한다. ‘차이나타운 봤나? 난 토요명화 죽돌이었다‘ 하면서 영화 얘길 쫘악~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난 내 손이 좋아‘ 하면서 인공손을 돌린다. 난 이걸로 밥도 먹고 똥도 닦는다‘ 그러면서. 자기가 왜 복수를 하려고 하는지 영화에 빗대어 얘기한다. 어떻게 보면 폼 잡는 장면이고, 어떻게 보면 영화적인 효과가 넘치는 장면이다. 아쉽다.”
--이쯤 되면 편집의 추억이다. 아쉬운 장면은 또 없나.
정신병원 신도 있었다.(웃음) 손이 잘리자마자 수하들이 정신병원에 집어넣은 거다. 비밀을 발설하지 못하게 정신병자로 몰았다. 나중에 3시간 40분짜리 디렉터스 컷이 나오면 다 보실 수 있겠지만 비주얼적으로 재미있다. 손 잘린 사실을 깜빡하고 머리를 긁적이려고 오른손을 올린다. 문득 느끼는 좌절감이나 허무함, 그런 것들이 한 번쯤 보여졌으면 했다.”
--옥상에서 라면 먹는 장면도 인상적이더라. 새로운 먹방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엔 처량한 장면으로 생각됐었다. 내가 가끔 그렇다. 라면을 먹다가 뜨거우면 뱉어버린다. 그리곤 흘린 걸 그릇에다 다시 마신다. 아, 이 장면은 터지겠다 했다. 혼자서 너무 웃었다. 너무 웃겨서 5번인가 NG를 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안 웃더라. 뻘쭘했는데 역시나 시사회 때도 안 웃었다.(웃음)”
--대신 통유리 화장실 장면에서 빵 터졌다.
감독님께 ‘미술할 때 통유리로 해주세요 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장에 가니 반은 벽이고 위에만 통유리더라. 감독님이 미술팀과 다시 얘기하고 재작업했다. 통유리 구하는 데만 4시간 걸린다고 하더라. 부담됐다.(웃음) ‘어떻게든 재밌어야 해~ 하면서 찍은 장면이다.(웃음)”
--조승우와 첫 작업이었다.
그 친구 평소 말투가 약간 시니컬하다. 농담처럼 ‘나를 약간 동생 취급한다고 했다. 그런 친구가 ‘난 형 때문에 이 작품 했다고 하니까 믿어지지 않았다. 저 뒤에 어떤 농담이 나올까. 두렵기도 하고.(웃음) 같이 촬영하면서 ‘생각보다 연기 참 잘하는 친구군 했다. 난 ‘내부자들이 승우 영화라고 생각한다. 너무너무 잘했다. 영화를 통해 좋은 친구가 생겨서 좋다. 열흘에 한 번은 맥주 사들고 우리 집에 놀러온다. 이제 친구나 마찬가지다. 어제도 잔뜩 맥주 들고 왔더라. 밤늦도록 술을 계속…”
--배우 조승우에게 발견한 매력은 뭔가.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능숙함이 있다. 자기 것으로 잘 만들어낸다. 어떤 대사를 곱씹고 씹어서 뱉어낼 때 결국 자기화돼서 딱 나온다. 능청스러움이랄까.”
--조승우 뮤지컬은 봤나.
사실 뮤지컬을 잘 몰랐다. 이번에 인연을 맺고 ‘헤드윅을 봤는데 놀랐다. 볼 때마다 ‘저 놈 보통놈 아니구나 한다. 왜 조승우라고 그러는지 알겠더라.”
--‘이강희 역의 백윤식과 붙는 장면도 많았다.
연륜과 내공은 어쩔 수가 없더라. 어떻게 저렇게 에너지가 팍팍 올까, 그 리액션이란 게 모두 상상을 빗나갔다. 백윤식 선배님의 묘한 뉘앙스, 대사법, 알 수 없는 호흡과 웃음. 당황스러울 정도로 놀라웠다.”
-‘미스 컨덕트 촬영은 잘 마쳤나.
‘내부자들 끝내고 찍은 게 ‘비욘드 디시트였는데 제목이 ‘미스 컨덕트로 바뀌었다. 저예산 영화다. 되게 빨리 찍었다. 그거 끝나면서 ‘황야의 7인에 캐스팅 돼서 들판 밖에 없는 아주 습하고 더운 지역에서 고생했다. 거의 물속을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육체적으로만 따지면 ‘달콤한 인생이 첫 번째고, 이게 두 번째로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다. ‘놈놈놈 같은 경우엔 말 타는 액션들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적어도 그곳은 덥지만 드라이했다.(웃음)”
--할리우드 활동을 돌아본다면.
큰 의미들이 있다. ‘터미네이터는 중학교 때 그만큼 획기적인 액션 영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영화였다. 어마어마한 레전드 작품이었다. 게다가 액체금속 ‘T-1000 캐릭터는 가장 임팩트 있던 캐릭터다. 학교 때 내 별명이 터미네이터였다. 팔씨름을 했는데 힘이 제일 세다고 터미네이터였다. 내가 터미네이터였는데 ‘터미네이터에 출연하니까 감개무량했다. ‘미스컨덕트도 내 역할이 뭐든 어떤 영화든 상관 없었다. 알파치노, 안소니 홉킨스가 나오는데 끝난 거다. 알파치노는 내 아이돌이다. 내 인생영화로 꼽는 영화 중 하나가 ‘스카페이스(Scarface, 1983)다. 그 배우와 같이 연기한다는 것만으로도, 과연 평생에 이런 행운을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모든 것 다 내려놓은 코믹물은 어떤가.
진짜 웃긴 영화 하고 싶다. 코믹 코드도 주관적인 것 같다. 쓴웃음 짓게 하는 코미디인데 남들은 너무 세련되게 웃겼다고 하고, 세련된 유머 같은데 ‘그거 슬랩스틱 아니냐고들 한다. 지점들이 서로 다 다르다. 세련된 상황이 웃긴 코미디면 꼭 하고 싶다. 단순히 웃기려고 애쓰는 코미디라면 별로.”
--스타로 누린 것도 많지만 개인사로 힘든 시간도 많았다.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뭔가.
버티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버티지 않으면 죽는 거? 예를 들면 죽는 게 있고 사는 게 있다. 근데 그 사이에서 고민하다 둘 중 하나를 51%의 생각으로 선택을 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51%만큼만 그 선택한 쪽으로 행동하는 것 보다 51%의 이유로 선택했지만 열심히 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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