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무소불위 권한행사로 기로에 선 ‘경제검찰 공정위’
입력 2015-11-10 16:36 

‘경제검찰은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재찬·공정위)의 별명이다.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감시와 제재를 전담하며 기업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평상시의 행정지도 권한 외에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에 갈음하는 임의조사와 심결(법원의 판결과 같은 절차)의 권한을 함께 가진 덕분이다. 이처럼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공정위가 위태롭다”는 말이 잦다. 과징금 취소소송의 패소 비율 증가 등 제재의 칼날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증거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 권한을 휘두르면서도 이렇다 할 견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감시와 제재의 기술과 그 엄정함이 제자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레이더L은 기로에 선 공정위가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공정위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법조인들의 제안을 소개한다.
공정위의 기업 조사에 법원의 영장이 필요한가.”
최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전문가들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주제다. 공정위 안팎에서 온도차가 크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공정위 조사는 임의적 행정조사(임의조사)다. 법에 보장된 조사지만 형사처벌이 아니라 행정 제재(과징금)가 목적이고 검찰 수사와 같은 강제조치도 아니라는 얘기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정위 경쟁정책 자문위원)는 공정위 조사는 피조사자(기업)의 동의를 전제로 한 임의적 조사라 상대방이 거부하면 강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조사방해 처벌 조항 잡음
그러나 공정위의 기업 조사에 대해 공정위 현장조사를 폭언·폭행 또는 고의적인 현장 진입 저지·지연 등과 같은 방법으로 방해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해질 수 있다”는 조사방해죄가 신설되면서 법조인들과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불붙었다. 이 조항은 2013년 2월 법 개정에 따라 신설(66조 1항 11호)됐다.
이를 어겨 형사처벌을 받은 기업은 아직 없다. 그러나 기업들은 처벌 조항의 존재 자체를 공포이자 위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해식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56·사법연수원 18기·대법원 재판연구관 역임)는 특히 직원 개인도 처벌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처벌받을 때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이미 ‘경제검찰로 불릴 만큼 기업들에겐 두려운 존재였는데 그 권한이 더욱 세졌다는 얘기다.

처벌조항 탓에 공정위 조사는 검찰 수사와 같은 강제 조치”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도 문제다. 박 변호사는 법에는 임의조사지만 (기업들은) 사실상 강제조사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들도 결국 수사를 받게 된 것 아니냐”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 조사가 과징금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기업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공정위 제재 신뢰 의문
특히 최근 공정위 제재(과징금)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조사방해죄에 대한 반발을 부채질하고 있다. 공정위 등에 따르면 과징금 액수는 2012년 5106억 원, 2013년 4184억 원에서 지난해 8043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에 불복한 기업들이 소송을 내 승소하면서 취소된 과징금 액수가 2012년과 2013년 각각 111억 원에서 지난해 1470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업은 거세게 몰아붙이는 공정위가 정작 제재는 허술하게 한다” 이러면 어떻게 공정위를 신뢰하겠냐”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공정위는 이러한 반발 분위기를 해소하겠다며 사건처리절차 자체개혁방안인 ‘사건처리 3.0을 발표했다. 이 지침엔 과잉조사 논란 등 잡음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황 교수는 앞으로 공정위 자체 혁신방안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지켜보겠다”는 태도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한 대기업 법무실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처벌조항이 그대로 있고 공정위에 대한 견제는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 무소불위 권한”
공정위가 이처럼 질타를 받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엄청난 권한 때문이다. 공정위는 평소에도 의심만 생기면 기업을 조사하고 지분율 변동 등에 관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행정지도 권한을 행사한다. 또 담합 등 혐의를 포착한 기업에 대해서는 현장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제를 위한 심결을 하는 사법적 권한도 함께 행사한다. 평시 감시 권한과 문제가 생겼을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함께 가진 셈이다. 두 가지 권한을 행사하는 목적이 형사처벌이 아니기 때문에 검찰 수사와는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결국 저항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검찰 수사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공정위의 조사가 지나치다는 점도 문제다. 박해식 변호사는 공정위가 가져가는 자료의 양이 사실은 검경 압수수색할 때 보다 광범위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자료를 가져간 뒤 돌려주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 영장 필요하다”
공정위 사건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전·현직 법관들은 대체로 공정위 권한을 엄격하게 견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들은 공정위가 헌법의 영장주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영장주의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는 헌법 12조 3항의 취지를 말한다. 수사기관이 헌법이 규정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등을 침해하는 강제수사를 벌일 때는 반드시 법원의 영장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공정위는 반대한다. 신영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수사 내지 형사처벌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영장주의가 맞지만 공정위는 형사처벌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영장주의 도입을 반대했다.
그러나 재경 지법의 한 중견 법관은 공정위 조사는 형식적으론 수사는 아니지만 조사받는 기업들이 받는 피해와 충격은 심각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공정위도 국세청이나 금융감독원처럼 특별사법경찰 권한과 지위를 부여받으면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 직접 수사도 하고 고발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과징금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 재판이 법원 1심을 건너뛰고 서울고법에서 처음 시작한다는 점도 영장주의 도입 의견의 근거가 되고 있다. 경쟁법 전문 법관을 지낸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사실상 공정위 심결이 법원의 1심을 대체하기 때문에 공정위 처분이 순수한 의미의 행정처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징금 취소 소송을 2심부터 시작하는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증거조사에서부터 사법적 성격을 갖는 게 좋다”며 법원 영장에 의한 견제를 주장했다.
◆ 기업 감시는 엄격한 견제 필요”
전문가들은 영장주의 논란이 공정위 조사의 목적 외에 절차도 엄격해야 한다”는 법률적인 문제제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공정위 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들은 기업이 아무리 지탄을 받더라도 공정위 조사는 절차적 정당성과 조사의 투명성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지방의 한 형사 법관은 우리 사회에 반기업 정서가 뿌리 깊게 박혀 있어 공정위의 활동이 대체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공정위의 처분이 엄격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견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정위 자문위원)는 공정위의 영장주의 도입에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공정위 신뢰가 예전과 달리 위태롭다”며 (공정위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하고 임기응변으로 해결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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