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M+제작일지] 뮤지컬 ‘풍월주’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 운루에 운치를 더하다
입력 2015-11-10 13:50 
우리가 만나는 무대 위 수많은 작품들은 그냥 탄생하지 않습니다. 몇 달에 거쳐 합을 맞춘 배우들과,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해줄 의상과 조명, 완벽하게 세팅된 무대 미술과 이를 총괄하는 연출가, 그리고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아름다운 음악까지.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무대 뒤, 움직이는 사람들의 ‘백조의 발버둥을 살짝 엿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MBN스타 금빛나 기자] 신라시대 상류층 귀부인을 위한 유곽 운루가 다시 한 번 문을 열었다. 바람과 달을 품고 다닌다는 남자기생 풍월들의 미모는 여전히 환하게 빛이 나며, 이들이 접대를 하는 공간 운루는 두 번의 내부공사 끝에 품격 있는 목조 건물과 운치 있는 조명으로 이들을 찾아온 손님들을 반긴다.

진성여왕이 통치하던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풍월주의 기본 뼈대는 진골과 성골 등 높은 신분의 여인들을 접대하는 기방 운루에 남자기생 풍월이 있었다는 발칙한 상상에서부터 시작된다. 꽃미남 풍월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풍월은 바로 열(성두섭, 이열, 김대현 분)로 그와 가까이 할 수 있는 이들은 신라의 통치자 진성여왕(정연, 이지숙 분)과, 그의 절친 사담(김지휘, 윤나무, 김성철 분)뿐이다. 우정과 사랑의 경계선에서 애틋한 감정으로 묶인 열과 사담, 그리고 열등감에 휩싸인 진성여왕의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는 진성여왕이 열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비극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2012년 초연과 2013년 재연 공연을 거쳐 2015년 세 번째 대학로로 돌아온 ‘풍월주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배우와 의상이 달라졌음은 물론, 새로운 넘버도 추가됐으며, 국악기 연주자가 직접 무대에서 라이브로 음악을 들려주며 음악의 애절함과 진한 여운을 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으로 변한 부분은 바로 ‘풍월주의 배경이 되는 운루의 무대 디자인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풍월주의 무대는 기방이라는 공간의 이미지를 살리기 보다는 인물의 관계가 드러나는 상징적 구조를 사용해 왔었다. 초연당시 운루는 삭막한 무대 위 3층 철제 구조물로 채워졌었다. 이는 중심인물인 열과 사담, 그리고 진성여왕의 신분차이와 위태로운 관계,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재연의 운루는 정반대였다. 3층 철제 구조물이 있는 자리는 계단식 구조물과 회전무대가 채웠다. 이는 신분의 높낮이를 떠나 개개인의 아픔과 갈등 속 수평적인 사랑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다.

반면 현재 ‘풍월주의 무대는 신분의 높낮이나 인물의 관계보다는 운루라는 이미지에 가장 집중했다. 상징적이었던 초연, 재연과는 달리 가장 신라시대 은밀한 공간인 운루다운 모습을 갖추었으며, 여기에 천과 조명장치를 가미하면서 장면의 전환을 꾀했다. 역대 가장 예쁜 운루가 탄생한 것이다.

◇ 연극 무대 디자이너,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 위를 그리다


세 번째 ‘풍월주의 무대를 완성시킨 주인공은 연극 ‘노랑봉투 ‘어느 계단 이야기 ‘세월호-공중의방 ‘스피킹 인 텅스의 무대를 탄생시켰던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였다. 뮤지컬 무대 디자인은 ‘풍월주가 처음.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했던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가 뮤지컬 무대를 디자인하게 된 배경에는 ‘스피킹 인 텅스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김동연 연출의 권유가 있었다.

그동안 뮤지컬은 연극과는 다른 장르라는 생각에 제안이 들어와도 정중하게 사양해 왔었다. ‘스피킹 인 텅스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을 거다. 함께 작업했던 김동연 연출이 ‘풍월주라는 작품을 하는데 해보지 않을래라고 제안을 하시더라. 만약 다른 분의 제의가 왔으면 ‘글쎄요라고 답했을 텐데, 워낙 좋은 분이기도 하고, 그때 당시 뮤지컬을 계속 거부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 맡게 되면서 나름 뮤지컬 작품도 보고 공부도 하면서 ‘풍월주를 준비해 갔었다.”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가 ‘풍월주 무대 작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연극과 뮤지컬 무대의 차이였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있는데 논리라든지 표현 방식이 연극과 다른 부분이 있더라.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노래였다. 연극은 드라마가 노래가 아닌 강한 사건들의 형태로 드라마가 풀려 나간다. 하지만 뮤지컬의 경우 드라마의 전개는 물론 각 배우의 동선들이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장면의 전환 형태들이 화려해지거나 커지는 부분이 있더라. 배우들이 연기하는 결도 달랐다.”

‘풍월주의 무대를 만들며 뮤지컬의 ‘쇼잉을 알게 된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는 처음 이러한 차이로 작업을 하는데 어색했었다고 털어놓았다. 노래 가사를 같이 들으면서 작업을 해야 한 다는 점 또한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에게는 낯설게 다가왔다. 대본이라는 텍스트가 주는 사고적인 여운과 함께 다가오는 노래가 주는 감각적인 여운을 살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외에 놀랐단 것은 소극장 무대가 생각보다도 더 작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대학로 상업 극장을 많이 가보지 못했는데, 막상 공연장에 가 보니 객석은 많고, 업스테이지도 없고, 활용할 수 있는 무대 공간은 좁더라. 최대한 사이드를 비우고 여유롭게 하려고 했는데, 결국 무대를 곽 채우게 됐다.”

◇ ‘물 위의 정자 서정적인 감각을 높이다.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면서 불안함을 주었던 초연의 3층 철제 구조물와 평면적이었던 재연의 계단식 무대 대신 올라온 목조 건물은 입체적인 공간 활용과 함께 ‘풍월주의 세계에 보는 재미를 첨가했다.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는 풍월주의 운루에 대해 ‘물 위의 정자를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풍월주는 감각적인 요소가 믹스가 된 뮤지컬이었다. 기본적으로 시대성을 더하기 위해 한옥의 구조를 사용했으며, 섬세함을 살리기 위해 섬 천이나 나무를 쓰면서 질감의 변화를 노렸다. 정서적인 뮤지컬이기에 최대한 이미지화를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나무는 꼭 들어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기둥이 올라갔다. 아쉬운 것은 ‘업스테이지가 독립돼 돼 주면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라는 부분이다. 교각도 내주고 들어오는 통로들도 길을 빼주고 싶었는데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공간에 여유가 있으면 2층 활용도도 좋았을텐데, 백스테이지 여유공간이 없다보니 답답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다.”

나무의 재질과 더불어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가 신경을 쓴 부분은 바로 천이었다. 좁은 공간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는 천을 이용해 단색과 배색을 활용하면서 공간의 체인지를 꾀했다.

다른 장치에 기댈 수 있는 것이 없더라. 공간의 한계가 있다 보니 무대가 바뀌게 하는 것 보다는 천을 이용해 하나의 인상을 바꿀 수 있게 해 봤다. 시작 전 무대를 가리는 천막도 이 같은 생각의 연장선에서 시작됐다.”

◇ 공연은 ‘드나듦의 개념, 균형이 필요하다”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가 무대를 디자인 하는 데 있어 신경을 쓰는 것은 ‘균형이었다. 그가 말하는 무대는 극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세계관이기에, 단순히 화려하거나 잘 만들기보다는, 작품의 세계관에 드나드는 배우들에 잘 녹아드는 것이었다.

공연은 ‘드나들다의 개념이다. 단순히 등퇴장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들이 이야기 속으로 잘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도록 거리감을 신경 쓰고, 조정해 주는 것이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뮤지컬 나름의 공간의 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는 공식화된 화려함보다는 필요에 따라 적재적소의 공간에서의 활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그가 무대를 디자인 하면서 가장 뿌듯했을 때는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메시지를 얻어갈 때였다. 아직 걸어온 길보다는 앞으로의 활약이 더 많이 남은 박성봉 무대 디자이너, 그의 무대디자이너의 길은 이제 시작됐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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