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해방이 오고…그들은 2500권의 책을 만들었다
입력 2015-11-05 15:37  | 수정 2015-11-05 15:38
초대 조상원 회장

‘해방둥이로 태어난 출판사가 있다. 현암(玄岩) 조상원(1913~2000)은 서른두 살의 나이에 해방 후 새 나라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하다 70년전 대구에 건국공론사를 세웠다. 첫 간행물은 혼란한 사회 속에서 ‘정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창간한 시사종합지 ‘건국공론이었다. 창간호는 며칠만에 매진이 됐다. 1951년 회사 이름을 현암사로 바꿔 걸었고, 출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출판사는 2대 조근태(1942~2010)의 손을 거쳐, 3대 조미현 대표(44)로 이어지며 든든한 출판명가로 뿌리를 내렸다. 유난히 부침이 심한 국내 출판계에 보기드문 장수 출판사다.
국내 최고(最古) 출판사중 하나인 현암사가 다음달 13~30일 경기도 파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70년 기념전을 연다. 단행본 출판으로만 반세기 이상을 버텨온 저력의 출판사만이 열 수 있는 성대한 생일 잔치인 셈이다.
현암사는 70년간 2500여 종을 발간했다. 전시에는 대표작들이 총망라해 걸린다. 1945년 8월 ‘건국공론의 창간을 격려하기 위해 이승만 전 대통령, 김구 선생, 신익희 선생이 써 보낸 휘호도 전시된다.

현암사를 대표하는 ‘법전의 57년사도 전시된다. 지금의 현암사를 있게된 책으로 고시생 중 법전을 보지 않은 이들이 없을 정도다. 1959년 4월 조선 경국대전의 용례를 참고해 이름 붙인 법령집 ‘법전이 출간됐다. 430개의 법령을 수록한 1120쪽의 법전은 출고하자마자 품절됐고, 정가 5000환의 책이 다음날 6000환으로 암거래되며, 한국 출판 사상 처음으로 웃돈 거래가 되기도 됐다. 개인이 고안한 이 제목은 사회적 반향을 얻어 국어사전에도 등재됐다. 57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출간되는 책이기도 하다.
1960년대 현암사는 ‘장자‘채근담‘법구경과 ‘희랍극 전집 등 동서양의 고전을 소개했다. 우리 고전 100권을 소개하고 해설을 붙인 ‘한국의 명저도 펴냈다.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등도 모두 1960년대 현암사에서 출간된 책이다.
70년대에는 ‘육당 최남선 전집(전 15권)과 ‘대세계사전집(전 16권)을 완간하는 과업을 이루기도 했다. 1976년에는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이 출간돼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이밖에도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윤범모의 ‘한국 현대미술 100년, 최완수의 ‘추사집 등 예술출판계의 명저도 두루 출판됐다. 최순우의 ‘한국미술 5천년을 비롯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100가지 등 시리즈 등 한국학 부문에서도 고유의 성과를 내왔다.
전시에는 활판 인쇄 고정을 알 수 있는 지형, 책에 들어간 다채로운 삽화도 걸린다. 출판평론가 로쟈 이현우, 장동석, 동화작가 이상권의 강연도 열린다.
창업자 조상원 회장은 출판인은 단순한 장사꾼만은 아니다. 이 나라의 교육과 문화의 일단을 맡은 용사와도 같다. 출판인은 대학 총장에 못지않은 사명을 지닌 사람이다”라고 회고록에 쓴바 있다. 그 덕분에 손녀로 그 과업을 이어받은 조 대표의 어깨도 무겁다. ‘1945~2015, 70년 책바치 100년을 향해 나아갑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서울 서교동 사옥에 내걸고, 70주년을 준비하고 있는 조 대표는 100년, 200년을 이어갈 수 있도록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노력하겠다. 기념 전시를 통해 출판을 시작했던 첫 마음을 다시금 기억하고 출판 본연의 사명에 충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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