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ETF에 쏠린 돈 펀드로 돌아올까
입력 2015-11-04 17:18  | 수정 2015-11-05 09:47
지난 3월 말 중국 본토 펀드에 5000만원을 넣은 개인투자자 김씨 계좌 잔액은 한 달 만에 6000만원으로 불었다. 같은 기간 상하이증시가 급등하며 20% 가까운 수익률을 달성한 것. 그러나 예상보다 이른 목표수익률 달성에도 김씨는 중도환매를 할 수 없었다. 가입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펀드를 환매하면 번 돈 중 70%를 수수료로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차례 환매 시기를 놓친 김씨의 펀드 수익률은 6월 중순부터 시작된 중국 증시 급락과 함께 손실구간으로 들어섰다.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본격적으로 환매수수료 폐지에 나서면서 투자자들에게 채워져 있던 족쇄가 풀릴 전망이다. 높은 환매수수료에 묶여 눈 뜨고 손실을 감수했던 과거와 달리 단기 급등한 펀드를 팔고 하락폭이 과도해 상승 가능성이 높은 펀드로 자유롭게 갈아탈 수 있게 된 셈이다.
환매수수료 폐지는 주식·채권형에 상관없이 공모펀드라면 모두 적용된다. 특히 채권형 펀드는 단기(만기 1년 미만) 채권펀드가 폐지 우선 대상으로 꼽혀 짧은 시간에 목표수익률 달성을 추구하는 기관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투자 단위가 커 낮은 수수료율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기관들은 지금까지 목표수익률을 달성해도 환매수수료가 붙는 3개월 이내엔 환매하기 어려웠다.
기존에는 운용전략상 단기 매매가 불가피한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레버리지 펀드를 제외한 공모펀드를 30일 이내에 중도환매하면 이익금 70%, 90일 이내는 30%를 일괄 환매수수료로 부과해왔다.

반면 자산운용사들 셈법은 복잡하다. 환매수수료 폐지에 따른 득실이 갈릴 수 있어서다. 먼저 환매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으면 단기적으로 자금 유출입이 활발해지면서 개별 펀드의 종목 매매가 어려워지고 변동성은 커진다. 특히 시장 국면 변화에 따라 단기간 대규모 자금이 이탈하면 펀드 운용에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일부 단기 매매가 필요한 유형을 제외하면 펀드는 기본적으로 장기 투자 문화가 정착돼야 하는 금융상품"이라며 "단기 투자 문화를 부추길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환매수수료 폐지가 결정된 펀드는 대부분 설정액이 크다.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2' 펀드는 운용설정액이 1조4000억원에 달하며 대부분 1000억원 이상인 펀드가 대상이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외국 펀드는 해당 국가 자금 유출입에 제한이 없는 펀드 위주로 선정했고 앞으로도 이런 기준에 부합하면 선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용사들이 이 같은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공모펀드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환매수수료 규제가 사라지면 펀드 투자가 활성화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주 장기 부진과 중소형주 급등락 등 국내 증시가 투자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서 최근 펀드 시장은 기술적(가격 요인에 의거) 투자가 성행하고 있다"며 "환매수수료가 없는 상장지수펀드(ETF)에 쏠리는 자금을 다시 일반 공모펀드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모펀드 중도환매수수료가 점진적으로 폐지되면 침체돼 있는 투자자들의 상품 선택 폭이 넓어질 전망이다.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시장 설정액 규모는 2012년 말부터 3년간 10조원 줄어든 53조6000억원을 기록한 반면 환매수수료가 없는 ETF 시장은 2012년 순자산 14조7000억원에서 올해 9월 기준 20조7000억원까지 급증했다.
[이용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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