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대간의 화해…老작가는 지금도 꿈꾼다
입력 2015-10-19 15:33  | 수정 2015-12-28 10:22

소설가 한승원(77)은 25년전 ‘아버지라는 단편 희곡을 썼다. 광주에서 모노드라마로 200여회 공연된 이 작품의 줄거리가 안타까워 그는 늘 장편으로 고쳐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5년 전부터 쓰고 고치고, 쓰고 또 고친 이 작품이 장편으로 출간됐다. ‘물에 잠긴 아버지(문학동네)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죽지를 펴지 못하고 주눅이 든 채 자투리 인간(잉여 인간)으로 살라온 남자의 한스러운 삶”이다.
57세부터 고향인 전남 장흥에 내려가 토굴을 짓고 집필에만 매달리고 있는 작가는 이번에도 다시 한번 고향 이야기를 끌어왔다. 장흥 유치면 일대 분지는 6·25 이후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치열한 빨치산 투쟁이 벌어진 곳이었다. 10년 전 장흥댐 건설로 697세대의 마을이 수몰되기도 했다.
주인공 김오현은 바로 이 곳에서 물처럼 밑으로 밑으로만 침잠하며 살아온 인물. 아버지가 남로당원이었던 원죄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갖은 고초를 겪으며, 비굴하고 양순한 삶을 죽은 듯 살아가는 남자다. 그는 불행으로 가득한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연좌제의 덫으로 고초를 겪던 아들 세대도 결국 이 트라우마를 극복해낸다. 작가는 체제 속에서 말하자면 모난 짓거리를 안하려고 하는 물같은 부드러운 생각을 가진 김오현의 생명력”이라고 설명했다.

희수(喜壽)의 나이에도 매년 한권 꼴로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는 작가는 세대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이 작품을 젊은 의식을 가진 독자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 가면서, ‘속아지 없이 살자고 마음먹었다. 철없이 살자는 말이다. 욕심을 다 버리고 오직 글쓰는 일에만 매달리니까 편안해지더라. 나는 골프, 바둑, 장기, 당구에도 다 취미가 없다. 바닷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산책하고 살면서 매일 소설만 생각한다”고 했다.
집필실 벽에다 ‘광기(狂氣) 라고 써붙이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 그의 머리 속은 이미 다음 작품으로 향하는 중이다. 99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야기다. 섬처녀로 11남매를 낳으신 지난한 삶을 사셨다. 그는 둘째아들인 내가 유일하게 출세를 했다. 먹고 살려고 열심히 쓴 결과다. 동생들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는 걸, 소설쓰면서 다 해냈다. 저를 아는 사람은 천하장사라고 부른다”고 회고했다.
그 쓰는 버릇 때문에 지금도 글을 쓰지 않으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고 그는 털어놨다. 글을 쓰는 한 살아있고 살아있는 한 글을 쓸 것이다. 내겐 두 생명이 있는데 하나는 생물학적 생명, 하나는 작가적 생명이다. 두개의 바퀴 중 하나만 무너져도 내 삶은 끝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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