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덕홍 회고록 출간… "김정일, 무조건 위성 만들라 했다
입력 2015-10-19 10:44  | 수정 2015-10-19 14:17
【 앵커멘트 】
1997년 북한 전 노동당 비서였던 황장엽 씨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 씨가 최근 회고록을 내놨습니다.
김정일이 1987년부터 위성개발을 지시했고, 목적은 미국 견제였다, 김일성은 부인이 3명이있었다고 기록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김선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위성만 개발하면 정말 무서울 것이 없게 된다. 미국 놈들도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다.

1987년 4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위성 개발에 착수했는데, 경제 위기로 10년이 지난 1997년에서야 시험 발사를 하게 됐다.

1997년 의형제인 황장엽 북한 전 노동당 비서와 함께 남한으로 망명한 김덕홍 씨의 회고록 내용입니다.

김 씨는 김일성이 대외적으로는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지만, 1955년부터 핵개발에 집착을 보였다는 내용도 언급했습니다.


북한의 날벼락이라고 적은 부분도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1984년 서울, 경기지역 폭우 때 남한 수재민 지원을 제안했는데, 남한 전두환이 이를 덜컥 받아들여 그때 쓴 전쟁예비물자를 지금도 채워넣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또 김일성은 세 번 장가를 갔고, 귀순 이후 연구소 설립 조건으로 황장엽 씨가 방미를 포기하자 그와의형제 관계도 틀어졌다고 밝혔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도 언급했습니다.

김씨는 당시 국정원이 "미국에는 몇백 달러만 주면 당신을 암살해 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며 협박당한 사실이 있다고 공개했습니다.

주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해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있는 북한이 싫어 망명을 선택했고, 부인과 1남 3녀의 자녀까지 잃어야했던 김덕홍.

▶ 인터뷰 : 김덕홍 / 1997년 7월 10일 망명 기자회견
- "출근하지 못하는 형편이 아니라 굶어 죽는 형편이라는 것."

「현재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유고의 심정으로 회고록을 출간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MBN뉴스 김선진입니다.
영상편집 : 송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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