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M+팟캐스터] ‘후라이’ 탈덕들이여 이어폰을 꼽아라, 그리고 추억에 젖어라
입력 2015-10-17 15:30 
세상에는 텔레비전과 인터넷 방송, 유튜브 채널 등 다양한 비주얼 중심의 플랫폼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비디오가 아닌 오디오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들도 있죠. ‘팟캐스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 주>


[MBN스타 유지훈 기자] 한국에서 ‘덕후는 흔히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탈덕은 벗을 탈(脫)자와 ‘덕후의 덕을 합친 신조어로 오타쿠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팟캐스트에는 ‘탈덕 후 일반인들 사이에 숨어사는 덕후들을 위한 방송이 있다.

늦은 밤 ‘탈덕한 그대들을 위한 헌정방송 후라이(이하 ‘후라이) 멤버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광진구 한 카페로 찾아가봤다. 후대인(본명 김창후), 봉이(본명 구본경), 정선생(본명 정영수) 세 사람은 밝은 미소와 함께 악수를 건넸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함께 인터뷰에 임했다.

제가 방송에서 쓰는 이름은 후대인입니다. 본명이 김창후니까 닉네임을 후대인이라고 했어요. 오인용이라는 팀의 김창후 이병이라고 하면 많이들 아시더라고요. 원래는 플래시애니메이터였는데 성우를 쓸 돈이 없어서 직접 목소리 연기를 했고 그러다보니 성우로 활동하고 있어요.”(후대인)

본명이 구본경이라서 닉네임은 봉이입니다. ‘후라이에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해설을 주로 맡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다른 멤버들보다 조금 더 조사를 해서 지식을 바탕으로 설명을 하 역할을 하는 거죠. 현재는 언더성우라고 불리는 비협회성우로 일을 하고 있어요.”(봉이)

두 사람의 소개에 이어 외모만으로도 묵직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정선생이 입을 열었다. 범상치 않은 풍채만큼이나 특이한 이력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본명은 정영수입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도 덕후같은 생활을 하며 어떤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그 안에서 쓰던 정선생이라는 닉네임을 ‘후라이에 그대로 가져왔어요. 멤버들 세 명 중에서는 제가 제일 막내입니다. 저도 내레이션, 녹음, 몇몇 방송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추가적인 사항으로는 피자를 좀 만들 줄 압니다.(웃음) 이탈리아에서 베라나폴리 디플로마 정식과정을 밟았어요. 커피에 대해서도 잘 알아요.”

‘후라이는 8, 90년대 애니메이션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다. 시즌 1에서는 과거 지상파 방송국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마법소녀 리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무적함장 테일러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주로 다뤘고 만화를 잊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기도 했다. 100화를 기점으로 시작한 시즌 2에서는 2000년대 이후의 만화인 ‘천원돌파 그렌라간 ‘언덕길의 아폴론등을 작품선정의 폭을 넓혔다.

서로 돌아가면서 만화를 선정해요. 다들 취향이 달라요. 후대인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 저는 작품성과 매니악한 것들, 정선생은 흔히 모애물이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인기작을 선정해요. ‘후라이 1기 때는 최소 10년 전의 만화를 선정했어요. 저희가 탈덕한, 30대 이상의 청취자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취지로 ‘후라이를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시즌2를 들어서 선정 기준을 바꾸니까 조금 더 자유로워지더라고요. 셋 중 하나가 애니메이션을 선정해오면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요. 80회 정도 되는 장편은 1기나 2기 정도까지는 시사하고 오죠.”(봉이)

제가 선정했던 ‘우리는 챔피언은 80화의 장편 애니메이션이었어요. 제가 선정했으니 소홀할 수 없으니까 두 분은 1기만 보게 하고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죠. 그때 형들한테 욕 많이 먹었는데.(웃음) ‘후라이 시즌1을 하면서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시즌 2에서는 작품선정이 조금 자유로워졌고 ‘천원돌파 그렌라간을 리뷰 할 수 있었어요. 끓어오르는 남자의 감정을 느꼈고 어떤 장면을 이야기할 때는 눈물이 글썽거리더라고요.(웃음)”(정선생)

김창후는 플래시애니메이션 오인용 시리즈에서 김창후 이병 외에도 다수의 작품에서, 구본경은 게임 ‘슈퍼스타 파이터와 각종 이러닝, 장영수는 게임 ‘슈퍼스타 파이터에 참여하며 성우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 셋의 조합은 어느날 이불을 박차고 나온 김창후의 용기가 시발점이 됐다.

어느 날 가만히 누워있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는 거예요. 그래서 이불차고 불켜고 두 사람에게 바로 연락했어요. 단순히 우리 셋이서 만화이야기를 하는 방송을 하자고 말했고 봉이가 거기에 코너라는 디테일을 추가했어요. 정선생은 엔지니어로서 편집을 맡았고요. 그리고 정선생 집에서 바로 레코딩이 됐기 바로 녹음을 했어요. 단순히 이 둘과 친하다고 팟캐스트를 함께하게 된 게 아니에요. ‘팟캐스트는 공중파와는 달라야한다 ‘취미가 같으면서 나와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래가지 못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면 패널을 급조한 느낌이 들어요. 서로 어색하고 눈치를 보고, 듣는 사람도 답답해요. 내게 반말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해야겠다 싶었어요.”(후대인)

편집은 별로 안 해요. 99% 녹음 그대로 나와요. 욕을 하더라도 기분 나쁘게, 심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저희가 알아서 잘 걸러요. 가끔 기술상의 실수만 편집해요. 잡음이 들어갔다거나 할 때만. 수위는 충분히 공중파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이에요. 편집을 한다면 삭제보다는 음악을 덮어씌우는 정도? 무편집, 무대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정선생)

‘후라이는 다른 팟캐스트보다 유독 두드러지는 점이 몇 가지 있다. 그중 최고를 꼽자면 청취자의 활동성이다. ‘후라이는 팟빵 후원시스템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공개방송에서는 100명이 넘는 팬들이 함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설명하는 멤버들의 표정에는 멋쩍은 웃음과 팬들에 대한 고마움이 엿보였다.

저희는 방송할 때 솔직해요. 애니메이션을 보고 느꼈던 것을 그대로 말했는데 그게 많이 어필이 된 것 같아요. 100화 특집 방송에서 한 청취자가 우울증이 심했는데 우리 방송을 듣고 삶의 희망을 가졌다고 했어요. 히키코모리였는데 밖에 나갔다가 왔대요. 희망을 찾고 다른 무언가를 시작다고. 그런걸 보면 저희로서는 매우 감사한 일이죠.(봉이)

1주년 기념 공개방송은 눈으로 청취자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팟캐스트는 얼마나 듣고 있는지 잘 모르잖아요. 데이터는 있는데 눈으로 볼 수는 없으니까. 100명만 받겠다고 했는데 100명이 넘게 오셨어요. 늦게 온 분은 서서 지켜봐주시고. 어떤 청취자는 우리방송을 들으면 순수했던 시절이 떠올라서 눈물이 난대요. ‘직장, 마누라, 자식걱정에 치이고 살았는데. 20년 전 학원에 다녀와서 만화를 보던 시절이 생각난다. 눈물이 난다. 감사하다 하시더라고요.”(후대인)

많은 팟캐스터들이 방송을 통해 행사, 방송출연을 하기도 한다. 또 몇몇은 책이나 기념품들로 팬들과 소통한다. ‘후라이는 그 어디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굿즈 상품을 선보였고 큰 성공을 거뒀다. 그 굿즈는 바로 ‘라디오 드라마다. 그들은 상금 50만원을 걸고 드라마 대본 공모전을 개최했고 20여 편의 작품들 가운데 하나가 ‘후라이 멤버들의 목소리로 만들어졌다. USB에 담긴 이 드라마는 약 180명의 청취자의 기념품이자 작품이 됐다.

제가 먼저 ‘라디오드라마를 해보자고 했어요. 저희가 받은 후원금을 어떻게 멋있게 쓸까 고민 했어요. 나눠가질까도 해봤는데 50만원 셋이 나눠봤자 얼마나 되겠어요.(웃음) 그래서 그 돈으로 시나리오 공모전을 열었죠. 시나리오를 선정하고, 저희가 녹음을 하고, 이걸 USB에 담아 판매했어요. ‘돈은 다섯 개 가격을 보내겠다. USB는 하나만 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있으니까 사는 거 같아요. 50만원을 저희가 나눠가지지 않은 걸 잘했다고 생각해요. 절대 수익을 남기겠다고 한 건 아니었어요.”(후대인)

‘청취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크리스마스파티, 공개방송 다 해봤는데 ‘청취자들한테 돌아갈 수 있는걸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나온 게 라디오드라마에요. 생각보다 잘 나와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의외로 많이 팔려서 놀랐어요. ‘직접 배달수령을 못하는 상황이니 음원으로 판매해달라 ‘해외에 있어 수령하기 어려우니 메일로 보내달라하는 분들도 있었어요.”(봉이)

셋은 모두 바쁜 일상에서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후라이 녹음은 일이 아닌 놀이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한 방송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로, 또 100회가 넘는 지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에는 그들만의 끈끈함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후라이는 제가 힘든 시기에 힘을 줬어요.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제가원해서 했던 일은 아니거든요.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후라이 방송 제안을 받게 되고 매주 나가서 웃고 떠들고 오니까 큰 힘을 얻게 됐어요. 일주일에 하루, 이렇게 숨통 트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직장을 다닐 때는 100kg이 넘었어요. 그만 두고 나서는 20kg정도 살을 뺐거든요. ‘후라이가 그 원동력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방송하다보면 답답할 때도 있고 뜻대로 안 되서 자책감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힘든 시기에 지지대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봉이)

저는 힘든 시기도 아니었고, 오히려 이 일을 하면서 살이 쪘어요.(웃음) 형들하고 만난지 7년 가까이 됐어요. 바쁘다보니 우리 셋이 만날 일이 적어졌고 공백기가 생겼죠. 그러다가 방송을 계기로 매주 모이게 된 거에요. ‘후라이를 계속하는 제일 큰 이유는 형들과 놀 수 있다는 거예요. 일 때문에 녹음을 가서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해요. ‘이병 김창호 아냐면서 으스대고. 실제로 후라이를 듣고 저한테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녹음 해달라고요.”(정선생)

많은 사람들이 유년시절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만화가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취급하며 멀리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자신도 모르게 ‘입덕과 ‘탈덕을 경험한 게 아닐까. ‘후라이는 덕후들 뿐만 아니라 바쁜 일상에 유년시절 추억을 잊은 사람들에게도 즐기기 좋은 팟캐스트다.


* ‘탈덕한 그대들을 위한 헌정방송 후라이

2013년 6월21일 ‘후라이 1회: 슬레이어즈, 사람들은 왜 탈덕을 하는가 편으로 첫 방송. 2015년 7월26일 ‘후라이 100회 총집편으로 시즌1 종료. 2주간 휴식기 후 8월16일 ‘후라이 시즌2-1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츠쿠네툰으로 시즌2 시작. 10월11일 ‘후라이 시즌2-8회: 언덕길의 아폴론까지 진행 중. 매주 일요일 업로드.

*‘팟캐스트는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ing)을 합성한 신조어다. 주로 비디오 파일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한다. 안드로이드 기기에서는 ‘팟빵 어플리케이션으로, 애플 기기에서는 ‘Podcast 앱으로 즐길 수 있다.


유지훈 기자 ji-hoon@mkculture.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