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기획…역사왜곡②] 청소년에게 물었다…기황후가 누구니?

‘기황후는 원나라 사람인데 고려를 사랑한 여왕”

광해에 대해서 폭군인지 성군인지 혼동해

[MBN스타 이다원 기자] 역사적 사실을 다뤘지만, 작품은 작품 그대로만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쓸릴 때마다 제작진의 변은 늘 이와 같다. 그러나 작품 그대로만 본다고 해서 역사 왜곡의 여파가 전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역사 공부를 막 시작한 중학교 1, 2학년 학생 60명을 대상으로 작품에서 다뤘던 역사적 인물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더니 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이번 조사는 서울시 구로구 내 한 중학교에 재학 중인 2개의 학급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 기황후? 원나라 사람인데 고려를 사랑한 여왕 아닌가요?”

MBC ‘기황후에서는 고려를 농단한 기황후와 새어머니를 겁탈한 충혜왕(왕유)을 여성 영웅과 순정남으로 미화했다. 제작진은 제작발표회 당시 기황후는 낯선 이국의 황실에서 고려의 자긍심을 지키며 운명적인 사랑과 정치적 이상을 실현한 여인”으로 그릴 것이라며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른 노선을 걷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드라마로만 봐달라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머릿속엔 ‘기황후의 영향이 굉장히 컸다. 기황후에 대해 안다고 대답한 21명 중 18명이 하지원” 원나라 사람인데 고려를 사랑한 여왕” 등 오답을 표기했고, 대다수는 드라마”라고 엉뚱한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왕유로 이름을 바꾼 충혜왕에 대해서도 좋은 사람” 느끼한 사람” 등 드라마 내용이나 배우를 의식한 듯한 대답들이 등장했다.



◇ 광해, 폭군인지 좋은 왕인지 헷갈려

광해는 국내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 과거 폭군으로 그려졌다면, 요즘은 그의 인간적인 면에 초첨을 둔다며 가상 에피소드를 넣거나(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카리스마로 부각(MBC ‘화정)하는 추세다.

이런 작품 트렌드는 아이들의 역사 의식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광해군에 대해 안다고 대답한 20명 중 ‘대동법을 실시한 사람 ‘조선 15대 왕 등 비교적 객관적 사실을 쓴 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폭군인지 좋은 왕인지 헷갈린다”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왕” 나쁜 부모를 둔 사람” 등 가치 판단을 염두한 대답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외에도 작품 속 인물 이미지를 고려한 듯한 ‘츤데레 ‘미친 왕자 등의 대답도 눈길을 끌었다.

◇ ‘국제시장을 보니 그 시대에 대해 잘 알게 됐어요”

영화 ‘국제시장도 개봉과 동시에 왜곡 논란에 휩싸였던 작품이다. 파독, 중화학공업 부흥 등에만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인간답지 못했던 노동 현실, 민주화 운동 등 경제 성장 이면의 아픈 상처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국제시장을 봤다고 답한 19명의 청소년에게 영화를 본 소감을 물었더니 대다수가 슬펐다” 안타까웠다”는 단편적 감정을 내비쳤지만 게 중 그 시대 역사를 잘 알 수 있었다”(3명)는 반응도 있었다. 영화 속 내용을 역사라고 그대로 믿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경제성장 이유로는 박정희 대통령” 파독 덕분” 열심히 일해서” 등 영화 속 이미지가 반영된 대답들이 이어졌다. 영화를 영화로만 봐달라는 어른들의 호소가 무색한 순간이었다.

◇ 공부보다는 드라마로 배우는 역사가 더 쏙쏙 들어와요”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팩션 작품은 어떤 의미일까. 이들은 이 작품들이 픽션을 바탕으로 해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고 염두하며 작품을 보는 것일까?

이 중 17명은 역사를 배우는 것에 도움이 된다” 혹은 학교보다 재밌게 역사를 배울 수 있다”고 대답했다. 작품 내용을 신뢰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와 작품 속 사건들이 다르지 않을 거란 인식도 묻어난다.

특이할 점은 요즘 사극엔 픽션이 많아 오히려 왜곡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것 같다”고 부정적인 대답(7명)도 있었다. 제작진이 작품을 만들 때 조금 더 책임 의식을 지녀야하지 않을까 의문이 남는 조사였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