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상품시장 ‘바로미터로 불리는 최대 광산 업체 글렌코어가 결국 대대적 감산에 들어갔다.
바닥 없는 원자재값 추락으로 주가와 회사채 값이 폭락하자 비용절감과 가격지지를 위해 주력 상품인 아연 생산량을 3분의 1 줄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선 앞으로 (관련 원자재)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주요 은행들이 글렌코어에 각각 3억5000만 달러를 대출해 준 것으로 드러나 사태 여파가 금융계까지 확산될 것이라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부도설이 확산됐던 글렌코어가 아연 생산량을 3분의 1 줄이기로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이 9일 보도했다.
글렌코어는 이날 홍콩증권거래소를 통해 아연 가격이 하락해 연간 생산량의 3분의 1에 달하는 50만t을 감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글렌코어는 아연 주 생산지인 호주 레이디로레타, 페루 이스케이크루즈(Iscaycruz)에서 생산을 중단키로 했다.
호주의 조지피셔, 맥아더리버 광산과 카자흐스탄의 여러 광산에서는 생산량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500여명의 인력감축도 같이 단행될 전망이다. 글렌코어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연, 납, 은 등의 가격 전망을 낙관하지만 현재 가격에 대응해 생산량을 선제적으로 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글렌코어 설명에도 월가를 비롯한 상품시장엔 부정적 기류가 더 커졌다.
생산량을 줄여 가격을 높이고 인건비·유지비용을 아끼겠다는 회사 의도와 달리 시장에선 앞으로 가격이 더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글렌코어 발표에도 구리·아연값을 비롯해 주가도 전날 대비 하락했다.
아연값은 지난 4월말까지만 해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메트릭톤(MT) 당 2400달러 안팎에 거래됐지만 현재 1667달러로 30% 수준 급락했다. 아연 뿐 아니다. 회사의 가장 큰 주력 상품인 구리 값도 같은 기간 6400달러에서 5135달러로 20%나 빠졌다.
글렌코어는 상반기에만 676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문제는 갈수록 현금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 현재 글렌코어 금고에는 약 30억달러 미만의 현금이 남아있지만 부채는 무려 1000억달러 안팎(120조원)에 이르고 있다.
월가에서 자칫 하단 글렌코어가 글로벌 상품시장에 리먼사태를 불어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배경이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사태의 시발점이 된 리먼브라더스는 파산 직전 현찰 보유액이 쥐꼬리만했고 증자에 필사적이었다.
글렌코어도 최근 25억달러 정도를 증자를 통해 조달했다.
글렌코어가 부도날 경우 여파는 막대하다. 파생상품 등으로 엮인 다른 업체에도 피해가 불가피하고 무엇보다 주요 금속값의 폭락사태로 줄부도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증권거래소 글렌코어 주가는 상반기 고점 가격(주당 9.68달러)한때 4분의 1토막 나기도 했다. 영국 런던증시에서도 최근 사상 처음으로 주가가 주당 1파운드 아래로 추락했다가 최근 간신히 1파운드 선을 회복했다. 주가 보다 더 암울한 것은 자금조달이다. 이 회사가 발행한 채권은 장외시장에서 ‘정크(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 투자부적격, 투기등급 채권을 의미하는 정크본드는 장외시장에서 보통 액면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그만큼 자금조달이 어렵고 훨씬 높은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다.
원자재 블랙홀이었던 중국경제가 갑자기 회복되지 않는 이상 ‘대세하락론이 지배하는 상품시장을 뒤집어 놓는 일이 불가능할 것으로 금융계와 전문가들 대부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렌코어가 끝내 부도가 날경우, 리먼브라더스 사태처럼 금융계에 막대한 쇼크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예상도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대출 연구기관 크레딧사이트(CreditSights)의 애널리스트들은 7일(현지시각) 데이터 업체인 딜로직(Dealogic)의 은행 부채에 대한 자료를 인용해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등 미국의 대표 은행들이 대기업 글렌코어에 각각 3억5000만 달러를 대출해 줬다고 밝혔다. 글렌코어가 부도날 경우 은행들로 신용위기가 옮겨 붙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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