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수입차 강판까지 분해해 연구하는 제철소의 심장 가보니
입력 2015-10-01 17:25 

‘벌레와의 전쟁. 충남 당진에 위치한 현대제철 냉연공장 출입구에 붙어 있는 경고표시다. 제철소에서 벌레와의 전쟁이라니...” 자동차 강판처럼 얇고 단단한 철판을 만드는 냉연공장은 벌레가 제품 표면에 달라붙으면 바로 불량이 될 정도로 예민한 공정이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현대제철이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기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냉연공장은 온도와 습도가 지하 와인 저장고처럼 쾌적했다. 낮은 빌라주택 만한 냉연설비에서 저온의 열처리를 마치고 나온 철강제품은 샤프심보다 얇은 두께로 섬유 원단처럼 뽑아져나왔다. 냉연철강은 건물 3~4층 높이까지 솟구쳤다가 내려오기를 수회 반복하면서 점점 더 얇아졌고, 검정색에서 은색으로 도금됐다.
현대제철은 모기업이 현대차인 만큼 자동차 강판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당진제철소 곳곳을 둘러보면서 보통 일관제철소라기보다 ‘자동차를 위한 제철소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제철소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술연구소다. 일반적인 철강 연구소라기보다 자동차소재 연구소에 가까운 곳이다.
2008년 첫 가동한 고로가 안정적으로 가동되면서 연구소의 핵심은 더 좋은 자동차 강판을 만드는 자동차강재센터 쪽으로 모아져왔다. 자동차강재센터는 자동차 차체와 섀시, 주요 부품 등 자동차 소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다. 꾸준히 연구개발(R&D)에 투자하다보니 어느덧 기술연구소 시설과 공간이 부족해져 연구개발 시설을 증축하고 있다.

기술연구소 안으로 들어서자 분해분석실이 눈에 띄었다. 종방향으로 절단돼 있는 외제차들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각종 차량에서 뽑아낸 다양한 부품들이 차종과 부품명을 적은 이름표를 달고 진열돼 있었다. 도축장에 들어온 소를 완전히 분해해 부위별로 걸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차체(강판) 분석용으로 약 8대, 섀시분석용으로 약 15대의 해외 유명차종을 사들여와 분해한다. 세계적으로 성능이 검증된 차량의 내부를 꼼꼼히 뜯어보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량 성능을 뒷받침하는 기술과 공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여기서 무언가를 발견하면 현대차와 현대제철, 그 협력사까지 힘을 합쳐 신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실제로 현대제철은 최근 독일 차량을 분해 분석한 덕분에 핵심 부품의 무게를 줄이고 내구성을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 앞바퀴와 서브프레임을 연결하는 로워암의 경우 기존엔 위아래 두 개의 판으로 연결되던 구조를 고강도의 단판형으로 교체해 약 20%의 중량감소 효과를 거뒀다. 기존에 빔(Beam)과 바(Bar)의 이중구조로 이뤄졌던 토션빔(뒷바퀴와 차체를 연결하는 부품)은 고강도 빔을 적용한 단일구조로 전환해 소재절감과 제조공정 단순화를 실현했다.
연구소의 이런 성과들은 자체 연구개발 능력이 없는 중소 차부품업체에 퍼져나가 상생협력 사례로 꼽히고 있다. 기술연구소의 연구개발로 업그레이드된 신형 부품이 현대차 신차에 적용되고, 부품사들은 신형 부품을 현대차 이외의 다른 차메이커에도 내다팔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식이다.
기술연구소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도전정신이 깃들어 있는 ‘현대제철의 심장으로 불린다. 당진제철소를 짓기 전부터 가장 높은 지대에 연구소를 먼저 건설해 공사현장의 컨트롤타워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당초 예상보다 빠른 시간 내에 고로를 안정화 시킨 것도 연구소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다. 기술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처음엔 대형 제철소를 우리가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결국 해내고 마는 게 ‘현대차 정신이 발휘됐다”고 말했다.
[당진 =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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