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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자24시] 음원 사재기 논란, 어디까지 실체인가
입력 2015-09-23 13:55  | 수정 2015-09-23 14:21
국내 한 기획사 대표가 음원 조작 브로커에게 받은 사진이라고 보도한 JTBC 방송 화면 갈무리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가요계가 술렁이고 있다. 특정 가수의 음원이나 음반을 한꺼번에 대량 사들여 차트에서 순위를 올리는 이른바 '사재기' 논란이 재점화 됐기 때문이다.
기자는 약 3년 전 타 신문사 재직 시절, 기획 보도를 통해 이에 대한 문제를 공식 제기한 바 있다. 이듬해 SM·YG·JYP·스타제국엔터테인먼트가 음원 차트 조작 대행업체를 수사해 달라며 검찰에 고발했지만 유야무야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당시 가요계에 따르면 인터넷 아이디를 팔고 사는 브로커(중개업자)가 있었다. 아이디 가격은 개당 500~1000원 정도다. 적게는 몇 천에서 많게는 2억~3억원이 든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구설에 오르자 대행업체는 국내를 떠나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본부를 두고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화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국내 음원 시장 최대 점유율을 자랑하는 멜론은 시스템 보안을 강화했다. 멜론은 A사가 주민번호 생성기를 이용, 2만여 개의 유령 아이디를 생성해 자동 스트리밍을 돌리고 음원을 사재기한 것으로 의심했던 터다.

멜론은 아이디 필터링 장치를 마련했다. 차트 순위는 스트리밍 횟수와 다운로드 수를 토대로 정해지는데 동일하거나 비슷한 아이디의 중복 집계를 막은 것이다.
이번에 멜론 내 수상한 아이디가 대거 발견된 건, 사실 새로운 일도 아니다. 실체가 공개적으로 외부에 드러났을 뿐이다. 멜론에서 A가수와 ‘팬맺기를 한 회원 아이디 명부를 살펴보니 일련번호가 붙은 유사 아이디 수백개가 있었다. 예를 들어 ‘abc01, ‘abc02, ‘abc03 등이다.
이는 팬덤 사이에 '총공'이라 불리는 자발적 사재기로 보인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의 성공을 위해 음원을 일시적으로 단합해 듣거나 구매한다. 일종의 편법이다. 불법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시작된 팬덤의 자발적 사재기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비칠 정도였다. 오프라인 앨범 시장이 침체한 현 가요계에 그나마 숨구멍을 틔운 게 속칭 '공구빨'(팬덤의 공동구매)이어서다.
심각한 건 휴대폰 수 백 대를 두고 음원 스트리밍을 통해 순위를 올린다는 한 브로커가 보여준 소위 '공장' 사진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멜론이 PC용 아이디는 걸러낼 수 있지만 모바일 필터링은 아직 불가능한 점을 악용한 브로커의 '진화'다.
다만 이를 두고 '음원 사재기' 대행업체 현장 사진으로 보기 어렵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한때 관련 마케팅에 종사했던 한 관계자는 "휴대폰 수 백대를 돌려 스트리밍을 한다면 통신비 및 제반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현실적으로 타산이 맞지 않는다. 해당 사진은 스팸 문자 발송 업체인 것 같다"고 추측했다.
JTBC '뉴스룸'이 취재 과정에서 확보했다는 일종의 증거 사진은 음원 순위를 올려주겠다며 제보자가에게 접근해 돈만 챙겨 달아나는 사기꾼의 도구 중 하나일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기에 당했음에도 신고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던 가요 기획사가 있다.
소문과 추측만 무성할 뿐 명확한 실체는 아직 없는 셈이다. 의혹 제기에 그칠 바에는 가요 시장의 불신만 키울뿐 실익이 없다는 우려섞인 불평도 나온다.
그럼에도 가요계는 이참에 '음원 사재기'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다. 직접 목격은 못했지만 많은 가요 관계자들이 음원 사재기가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가만히 있자니 '찔리는게 있는' 음원 사재기 당사자로 비칠 억울한 오명도 두렵다. 이래저래 '꼼수'가 만연하다 보니 오롯히 음악으로만 승부를 보려는 가수들은 애초 정당한 기회를 박탈 당했다는 피해 의식도 크다.
제대로 된 사전 프로모션을 진행할 경제적 여력과 창구도 없거니와 시청률과 구독률이 약한 가수에 관심을 두는 미디어를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게 다 돈이다. '쩐의 전쟁'이 난무한 가요계에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은 심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차트 상위권에 드는 것과 50위 밖에 밀려나 있는 격차는 수익적인 부분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가요 제작자는 소속 가수에 1위 타이틀을 안기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덤으로 이득까지 얻는다. 방송 출연료는 푼돈이다. 방송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져야 수 천 만원짜리 광고·행사를 따낸다. 그러려면 일단 음원 순위가 좋아야 한다.
음악 사이트는 이를 아주 잘 이용하고 있다. 우리 오빠·누나(아이돌)가 경쟁 상대에게 지고 있다'는 팬심을 자극해야 음원을 많이 팔기 쉽다. 그래서 가요계에서는 아예 실시간 차트가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시간 차트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는 지난 6월 인터뷰에서 "음악 방송 순위, 음원 사재기 의혹 등 지금 가요계는 내가 보기에 객관적일 수 있어도 공정하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각자의 셈법 속 힘이 없으면 싸울 수 있는 판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게 국내 대표 가요 기획사 수장의 말이다.
곱씹어 볼수록 쓰기만 하다.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돈이 곡당 10원꼴도 안 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실시간 차트 순위 대로 듣기 바쁜 우리나라에서는 음악도 성적순이다. 음원 사재기 유혹은 가요 제작자들에게 '금단의 열매'일 수밖에 없다.
음원 사재기 대행업체나 이에 혹한 가요 기획사가 있다면 그들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논란의 타깃은 일부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음악 사이트와 관할 부처로 향해야 한다. 한 관계자는 "브로커든 팬심이든, 기형적인 우리나라 음악 시장이 그려낸 씁쓸한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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