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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의 진짜타자] ‘프리스타일’ 박석민, 가르쳐서 만들어낼 수 없는 타자
입력 2015-09-21 06:02 
‘예술일까, 예능일까’ 박석민의 헛스윙 후 360도 턴은 강타자의 모습으로서는 파격적으로 독특하다. 사진=김영구 기자
삼성 박석민(30)의 타격 폼은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보다 야구를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더 신기해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떻게 저게 넘어가지? 타격 폼의 정석을 알고 있다면 더욱 갸웃하게 되는 장면. ‘엘리트교육의 이단아라고 할 그에게는 유독 흔하다.
20일 부산 롯데전에서 5회 밀어 친 박석민의 타구는 사직구장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언뜻 엉덩이가 빠지고 상체는 과하게 숙여진 듯 했지만, 이 홈런은 출범 34년째 KBO의 첫 9타점 경기를 완성한 역사적인 그랜드슬램이 됐다.
모든 좋은 결과에는 이유가 있다. 파격과 신기로 가득한 박석민의 스윙에는 뚜렷한 장점이 있다. 그는 ‘스테이 백(stay back)을 철저하게 해내는 타자다.
‘스테이 백은 정적인 준비자세인 스탠스에서 힙의 회전이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중심이동 구간에서 팔을 (앞으로 나오게 하지 않고) 뒤에 두어 스윙에 실릴 힘을 최대한 장전하라는 미션이다. 스테이 백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중심을 뒤에 두라는 의미로 알아듣는 것인데(의외로 이런 오해가 흔한 편이다) 뒤에 두어야 하는 것은 몸의 중심이 아니라 배트를 쥔 손이다. 몸의 중심은 오히려 반대방향인 앞으로 이동해야 한다. 앞발(우타자 박석민의 왼발)에 중심이 실리면서 이후의 회전구간에서 (회전력의 크기를 결정할 스윙의 반지름을 키우면서) 축과 배트의 거리를 가장 멀리 떨어뜨리는 것이 스테이 백의 목적이니까.
상체가 앞으로 쏠린 듯한 스윙에서도, 뒤로 넘어진 듯한 스윙에서도 박석민은 철저하게 회전의 직전까지 배트를 쥔 손을 뒤에 남겨두는 ‘스테이 백을 해낸다. 그래서 그의 스윙은 무너진 모양으로 보여도 무너진 게 아닐 때가 많다. 타구에는 제대로 힘이 실린다. 20일의 그랜드슬램도 그랬다. 겉으로 보이는 것 보다 기본이 지켜지고 있는 스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석민의 스윙이란, 수많은 우리 타자들과 코치들이 무수한 실험과 경험으로 구상해 낸 ‘최적의 타격 폼과는 어찌나 머쓱할 만큼 거리가 있는지. 자주 동작의 폭이 커 보이고 자주 못 생겨 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중심이동과 타이밍의 기본에 집중하면서 들여다보면, 그의 스윙은 놀랍도록 원칙을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석민의 특이한 타격 폼은 여기저기 유난히 부상 치레가 많은 선수 생활을 거치면서 단련해낸 그만의 해답이었던 것 같다. 통증과 싸우면서 완성해 낸 그의 스윙은 다이내믹하고 감각적이다.

솔직히 시간을 5년 전으로 돌려 한국에서 스무 해 프로 선수로 뛰다가 코치로 일하던 시절의 내가 박석민 같은 타자를 만났다면,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지 않았을 자신이 없다. 그 때까지의 나는 정석적인 타격 폼의 가치에 좀 더 집착했던 것 같다.
특이하고 이형적인 타격 폼에 대한 보다 유연한 수용성을 나는 미국에서 배웠다. 스윙의 원리를 가르치고 역학을 설명하지만, 절대 선수들의 동작을 어떤 틀에 끼워 맞추지 않는 그들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세상에는 깨알같이 다른 특성의 타자들이 있고, 그들이 상대해야 할 그만큼 깨알같이 다른 투수들이 있다는 것을. 타석을 채울 단 하나의 ‘최적의 동작이란 있을 수 없다.
박석민은 확실히 가르쳐서 만들어낼 수 없는 유형의 타자다. 정답을 강요하지 않았던 지도자들이 있었던 덕분에, 혹은 주변의 시선과 참견에도 자신만의 해법을 지킨 그의 고집과 의지가 있었던 덕분에, 우리는 오늘 보물 같은 스타 한명을 갖게 됐다. 파격의 재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타자 박석민이다.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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