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진실]'난민, 우리 모두의 문제'
입력 2015-09-08 21:05  | 수정 2015-09-09 16:21
포연이 가득한 시리아를 떠나 작은 고무배에 올랐지만. 아빠 손을 놓쳐 숨진 쿠르디의 사진 한장이 전 세계를 울렸지요. 유럽연합은 난민 의무 할당이라는 밑그림을 내놨지만 서로 떠넘기기에 바쁘고 난민을 위해서 국경을 열었던 오스트리아는 하루 만에 다시 문을 닫았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콩고 출신으로 처음 난민 인정을 받은 광주대 욤비 교수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인사)

욤비 토나
광주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아시아·태평양 난민인권 네트워크 부회장
콩고 민주 공화국 키토나 왕국 왕자
콩고 킨샤사 국립대 경제학 전공
콩고비밀정보국(ANR) 근무
정보누설 혐의로 투옥
탈옥 후 한국으로 망명
6년의 소송끝에 한국서 난민 자격 취득


-앵커
쿠르디 사진 보셨죠? 어떠셨어요?

=욤비 토나 교수
이 사진 보면 옛날에 내가 난민으로 왔을 때 생각 나요.

-앵커
아니, 그런데 교수님은 그러니까 콩고에서 그래도 대학도 나오시고 굉장히 잘 사셨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우리나라에 한국에 난민 신청하셨나요?

=욤비 토나 교수
제가 콩고에서 빈민 정부에서 일했었어요. 거기에서 정부에서. 이 문제 때문에 정치 문제 때문에 왔어요, 여기까지.

-앵커
사는 게 힘들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 따로 오신 거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오셨어요? 왜 한국을 선택하셨어요?

=욤비 토나 교수
이 질문 많이 받았어요. 제가 첫 번째 한국 생각 없었어요. 제가 중국까지 가서 중국에서 다른 나라 가려면 중국 망명 신청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 사우스 코리아 가서 그때 생각은 북한이에요. 왜냐하면 코리아 이야기하면, 생각 바로 북한 뉴스 해요. 왜냐하면 북한 뉴스 많이 나와요.

-앵커
아, 콩고에 있다 보니까.

=욤비 토나 교수
저도 북한입니다. 그런데 신청해서 나와서 북한 말고 한국 왔어요.

-앵커
그러면 난민 신청을 하자마자 된 건가요, 한국에서?

=욤비 토나 교수
6년 후에 나왔어요.


-앵커
6년이 걸렸군요. 왜 그랬을까요?

=욤비 토나 교수
이 질문을 정부한테 물어봐야 해요. 제가 몰라요. 왜냐하면 제가 콩고 출발해서 난민이에요. 그런데 여기 와서 난민 망명 신청하면 프로세스 있어요. 확인을 해야 해요. 그런데 그때 또 한국에서 문제 많이 있었어요.

-앵커
그래서 길게 걸리셨군요.

=욤비 토나 교수
길게.

-앵커
그러면 어떤 일을 하셨어요, 6년 동안?

=욤비 토나 교수
밥 먹어야지, 밥 없으면 야간에 제가 일했던 사료 공장이나 케이크 공장이나 여러 가지 공장.

-앵커
짧은 일을 조금조금씩 하셨었군요. 그런데 이런 말도 좀 들었어요. 그 공장 다니셨으니까 말이지만 한국 공장에서 바뀌지 않는 게 있다. 한국 사람은 무조건 왕이고 그다음에 조건족 그다음에 필리핀, 베트남, 아프리카. 아프리카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하셨다고요?

=욤비 토나 교수
맞습니다.

-앵커
왜 그랬을까요?

=욤비 토나 교수
이것 지금까지 한국에서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 밖에 가면 외국인 보면 생각 똑같이 있어요. 첫 번째 미국 사람. 영어 선생님. 유럽 사람, 영어 선생님. 호주 사람, 뉴질랜드 사람 아니면 다른 아시안 나라 사람들 일 때문에 왔어요. 아니면 아프리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에요. 우리나라 밥 때문에 와서, 옷 때문에 왔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앵커
그런데 참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한국말도 너무나 잘하시고 어떻게 적응을 하셨나요?

=욤비 토나 교수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 나라가 내 두 번째 나라거든요. 첫 번째 콩고. 여기에서 살면서 한국은 내 두 번째 나라예요. 그런데 문제가 여러 가지 많아요. 그런데 어떻게 우리 같이 살아요. 차별 문제. 아프리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학교 못 간 사람, 아픈 사람들, 다 나쁜생각 있어요, 아프리카 사람 생각할 때. 계속 한국 사람들 만나면 저희가 아프리카 사람이에요, 콩고 사람이에요. 콩고 사람들, 한국 사람들 똑같은 사람들이에요.

-앵커
굉장히 많이 공장 같은 거 다니시면서 다치기도 하고 그러셨다고 들었는데.

=욤비 토나 교수
아프면 병원을 못 가요. 왜냐하면 의료보험 없으니까 병원을 못 가요. 외국인 병원 보내서 병원에서 수술해야 했었어요. 수술 병원비 없었어요. 병원이 감옥이었어요. 왜냐하면 병원비. (병원)밖에 못 (나)가요.

-앵커
아, 병원비 안 내고 할까 봐, (병원)감옥에 갔다고.

=욤비 토나 교수
네, 병원이 없었어요. 그런데 친구들 밖에 가서 1천 원, 500원 이거 다 받아서 일주일 후에 병원비 다 돼서 밖에 나갔습니다.

-앵커
와서 밖에 나가서 살아서 아시겠지만 한국의 난민 대책에 사실은 거의 없거든요. 어디는 브로커까지 중간에 끼어서 돈을 받아서 소개시키기도 하고 그러는데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바뀌어야 할 부분.

=욤비 토나 교수
이 난민 문제에 한 나라 문제 아니예요. 난민들 여기 돈 때문에, 밥 때문에 오고 있는거 아닙니다. 난민 보호 때문에 가고 있어요. 이런 문제가 있었어요.

-앵커
알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고생을 많이 하시고 지금은 이렇게 번듯한 교수 교수님 되셔서 아주 보기 좋습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상출처 : KBS 인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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