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의료 선진국 “빅데이터 잡아라”…한국은 “빅데이터 따위가”
입력 2015-09-07 15:32 

국가수리과학연구소(NIMS·이하 수학연)는 서울아산병원과 심혈관 질환을 수술 없이 파악하는 데이터 분석법을 개발하다 최근 중단했다. 의료계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렇다. 심혈관 질환 치료법으로 많이 사용되는 스텐트 시술은 스텐트를 삽입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의사가 CT 영상, 혈관부위 압력 등을 체크한 후 최종 판단을 한다. 수학연과 아산병원은 지금까지 병원에서 CT 촬영을 했던 여러 환자들 영상기록을 모아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었다. 의사가 시술에 앞서 담당 환자 CT를 찍고 데이터 베이스에서 환자와 비슷한 CT 영상을 보인 다른 환자들 기록을 살펴 시술 결정에 도움을 받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수학연 현윤경 부장은 정보보호, 연구비 문제 등이 있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의사들의 냉랭한 시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데이터가 그렇게 잘 분석한다면 의사는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며 나중에 IBM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왓슨이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거부감이 프로젝트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국내 의료계에서 빅데이터 활용은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에서는 빅데이터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최근 미국 의료 IT 전문기업 플래티론과 가든트는 전격 제휴를 했다. 플래티론은 구글이 투자한 헬스케어 벤처로 의료정보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이고, 가든트는 혈액만으로 간편하게 암을 진단하는 키트를 개발한 벤처기업이다. 두 회사는 암 정복을 목표로 환자 정보를 공유해 ‘빅데이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제휴다.

암환자들은 가든트 암진단 키트로 암 진행상황 등을 체크한다. 이 데이터는 플래티론이 개발한 클라우드에 전송된다. 클라우드에 축적돼 있는 의료정보는 의사들도 활용할 수 있다. 가령 ‘앞선 여러 환자들의 사례를 봤을때 이 환자는 이렇게 치료하겠다라던가 ‘이 환자는 A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것 같으니 B 항암제로 바꿔야겠다 등을 파악해 필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두 기업 정보공유는 제약회사들과 환자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헬미 엘토키 가든트 최고경영자(CEO)는 새로운 항암제가 임상시험까지 평균 8.8년 걸리는데 그나마 신약 셋 중 하나는 시험 참가자를 충분히 모집하지 못해 실패한다”며 우리는 제공하는 암환자들 임상데이터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제휴로 환자들은 암 치료 기간과 비용부담을 줄이면서도 더 효과적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치료제를 사용하는데 이런 약들은 표적항암제가 아닌 일반 항암제인 경우가 많다. 감기로 비유하면 종합감기약인 셈이다. 환자들로선 예후를 모른 채 큰 비용을 내고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빅데이터를 활용한다면 이런 문제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의사가 실시간으로 임상결과를 확인해 환자에게 잘 듣는 치료제를 골라 제때 처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보 유출 가능성을 들며 환자 의료정보 공유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엘토키 CEO는 환자 개인정보는 법과 규정에 따라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 부장은 빅데이터를 개발한다고 하면서 공공성이 큰 의료데이터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며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은 병원 간 의료정보만 제대로 활용하면 질병 치료에 매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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