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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좀 아는 언니의 직썰] 혁오가 유명해져 서운해? 그렇다면 이 가수!
입력 2015-09-07 11:03 
이센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I 연재 기고 = 음악 좀 아는 언니의 직썰⑥] 혁오가 유명해져 서운해? 그렇다면 이 가수!
나만 알고 싶은 밴드 '혁오'가 유명해져 서운하다는 팬들이 있다. 그런데 찾아보면 별처럼 빛나는 뮤지션들이 참 많다. 최근 앨범을 발매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두 뮤지션을 소개한다.
사건과 구설로 인지도만큼은 '국민적'이지만 음악적 천재성은 덜 알려진 힙합 뮤지션 이센스. 그리고 8년 동안 거리 공연만 해오다가 스스로 앨범을 제작한 인디 뮤지션 조민희가 주인공이다.
음악 관계자들과 힙합 팬들 사이에서 발매 후 더욱 '핫' 해진 이센스의 솔로 앨범 '애닉도트(Anecdote)'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센스는 현재 대마초 투약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앨범 작업을 다 마친 상태에서 갑자기 수감되었기 때문에 이센스 측은 앨범 발매 시기를 계속해서 조정해왔고, 급기야 '옥중 발매'를 결정했다. (한국의 투팍(2 Pac) 등극!)
이러한 탓에 이센스의 앨범은 제대로 된 홍보를 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뮤직비디오도 없고 인터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오직 이 앨범 재킷에 이센스의 본명인 강민호(KMH)가 새겨진 손수건 한 장만이 이센스의 음악 세계로 인도해줄 뿐이었다.
이 앨범은 인간 강민호의 출생부터 래퍼의 꿈을 갖게된 시절을 지나 아티스트 이센스의 오늘까지 이어지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선 굵게 그려진다.
첫 곡 '주사위'부터 타이틀곡 '디 애닉도트(The Anecdote)' 외 마지막 곡 '언노운 벌시스(Unknown Verses)'에 이르기까지 모든 곡은 요즘 트렌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기 만의 비트로 구성됐다.
그 비트 위에서 최적의 어휘와 라임을 통해 마치 류현진이 던지는 완벽한 제구의 향연처럼 이센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정확하게 귀로 꽂혀 들어온다.

별다른 꿈이 없던 중학생 강민호. 그는 우연히 랩에 대한 꿈을 갖게 되어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전국의 랩 대회에 출전하며 '대구의 랩 유망주'로 성장했다.
그는 당시 부산에서 활동하던 래퍼 사이먼 도미닉과 '슈프림팀'을 결성했고, 국내 굴지의 힙합 레이블인 '아메바 컬쳐'로 마침내 입성했다. 그는 유명해졌고 많은 돈을 벌었지만, 흥행을 위해서는 표절도 불사하고 음악보다는 돈과 인기·여자가 먼저인 '그 사회'의 성공 방식에 회의를 품었다.
결국 그는 '그 사회'에서 나왔고, 스스로 타협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이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다. 이것이 이번 앨범의 줄거리다.
수록곡 '디 애닉도트'와 '빽 인 타임(Back in Time)' 등에서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와 성장기 등 개인적인 삶의 고백을 담아냈다.
'에이지(A-G-E)' '삐긋' '10.18.14', '틱톡(Tik Tok)' 등 여러 곡들을 통해서는 '그 사회'에 대한 비난을 직설적으로 쏟아내는 동시에 힙합씬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옳다고 외치지도 않는다. 신념과 철학을 지키고 싶은 자아와,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모난 돌'로 사는 자아에 대한 애증도 비춰진다.
이센스와 힙합신, 한 개인과 그가 속해있는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과 세밀한 감정 묘사들이 가득 담겨있는 이 앨범은 마치 이센스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혹은 누군가의 방을 은밀하게 들여다보는 듯 내밀한 기분을 전해준다.
가슴 아픈 사연, 눈물겨운 고생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노랫말을 따라 함께 흐른다.​
또한 이센스의 탁월한 언어 감각과 신들린 라임을 듣고 있으면 그 천재적인 표현 감각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여자·돈·'잘 나간다'는 자랑 등 일명 '스웩(Swag)'이라 불리는 '허세'가 난무하는 힙합신에서, 혹시나 뜰지 몰라서 눈 딱 감고 '쇼 미 더 머니'를 나가야 그나마 주목을 받게 되는 힙합신에서, 이센스의 앨범은 요즘 흥행 공식으로 불리는 '스웩'도 없고 스타급 아티스트의 피처링도 없이 단순히 '이야기의 힘' 하나로 밀어부쳤다.
그의 죄는 미워하되 음악은 미워하지 말자는 호평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민희
아직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점점 음악 팬의 사랑을 받게될 아티스트 후보자, 조민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디지털 레코딩이 일반화된 시대에 1973년산 릴 테잎을 구해서 앨범 '올 더 피플(All the People)' 전곡을 녹음했다. 작사, 작곡, 연주, 녹음, 믹싱, 마스터링 등 모든 앨범 작업은 물론 앨범 재킷 디자인에 뮤직비디오까지 총 2년에 걸쳐 그의 집에서 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냈다. (은근과 끈기가 넘치는 한국인 중의 한국인이다)
릴 테잎 녹음 방식인만큼 사운드가 마치 예전 LP를 듣는 듯 아련한 기분을 선사한다. 비틀즈(Beatles)를 떠올리게 하는 온기 넘치는 멜로디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실험적인 사운드도 담겼다. 켄트(Kent)를 듣는 듯 몽환적이기도 하다. 총 10곡은 저마다의 빛깔이 뚜렷하다.
또렷한 사운드가 아닌 몽환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사운드이기에 이 앨범은 청자와 일정 정도의 거리감을 준다. 바쁘게 사람들이 오고 가는 어느 거리의 바로 건너편, 푸른 오솔길이 펼쳐져 있는 '갑작스런' 느낌의 거리감일지도 모른다.
따뜻한 건반 소리, 적당히 울리는 기타 소리, 나즈막하게 울려퍼지는 조민희의 보컬, 이 앨범은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 '피로 사회'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휴식같은 존재다.
가수가 되기 위해 경쟁을 통해 기획사에 들어가고, 춤·노래·연기를 배우고, 짜여진 기획에 따라 레코딩과 무대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최근 시스템이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쓰고 만들 수 있는 가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떤 기획사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8년의 시간을 강남역에서 인사동에서 혹은 대학로에서 '거리의 가수'로 지내오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2년간 오롯이 작업물을 완성해낸 조민희는 요즘 시스템에 반하는 존재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도 그에 대한 정보는 없다. 그의 거리 공연을 감상하던 사람들이 찍어 올린 몇 개의 동영상들이 전부다.
앨범이 나오면 음악 순위 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 가리지않고 출연해 신곡 홍보에 열을 올리는 여느 가수들에 비하면 조민희는 언더그라운드 중에서도 가장 깊은 지하층에 있는 존재다.
모든 가사가 영어인 점이 아쉽지만, 그가 멜론 음원평에 스스로 댓글을 달면서 설명한 내용이 있다. (미디어와 인터뷰를 통해 설명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 점도 참 마음이 짠해지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영어권 음악을 들으며 작곡을 해와서 현재 음악에는 영어 가사가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고, 한글 가사 작업도 차차 하겠다"는 다짐이다.
이 활어처럼 생생한 생명력으로 넘치는 '셀프' 뮤지션이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더 만나고 어떤 음악적 발전을 더 이뤄낼지 기대 된다.
이센스의 '디 애닉도트'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난 아들 엄마와 아빠의 아들(중략) 자랑스럽게 내 길을 걸어왔네. 내 길을 걸어가네. 내 길을 걸어가네'
이센스와 조민희. 대중의 취향과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오직 스스로의 이야기를 무기 삼아 이 복잡하고 외로운 길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길은 '나만 알고 싶은' 길로써 매력적이다. 그러한 길은 언젠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되기도 한다.
※ 필자 '음악 좀 아는 언니'는 가요·팝·공연 등 장르를 넘나들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엔터테인먼트업계 종사자다. 가죽 치마를 즐겨입는 그는,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리는 음악 평론가이기도 하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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