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금융활동을 돕기 위한 정부 제도를 악용해 억대 부당이득을 취한 업체 대표와 관계자가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정부가 시행하는 ‘B2B 대출의 허점을 노렸다. B2B 대출이란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구매업체)이 다른 업체(판매업체)로부터 물품을 사들일 때 은행에서 대출아 대금을 치를 수 있도록 신용보증기금(신보)이 지급보증을 서주는 제도다. 업체 대표 등은 신보 지급보증을 받은 뒤 허위로 서류를 꾸며 은행 대출금을 빼돌렸다. 부도 직전에 대규모로 B2B 대출을 받아 챙기는 ‘도덕적 해이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서울서부지검 형사 5부(손준성 부장검사)는 신보의 B2B 대출 보증을 받은 뒤 허위 매출(매입) 서류와 세금계산서 등을 꾸며 은행 대출금을 반복적으로 빼돌려 가로챈 중소기업 관계자 12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으로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검찰은 이 가운데 26명을 구속 기소하고 7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서부지검은 국가 재정에 손실을 초래하는 부정부패 사범을 단속하기 위해 관련 기획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4월부터 4개월간 수사를 통해 신보 B2B 구매자금대출 제도를 악용한 사기 사범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B2B 대출을 받은 물품 구매기업은 신보의 지급보증으로 은행 대출을 받아 판매사에 물품 대금을 지급하고 3~6개월 뒤 대출 은행에 대출금을 갚게 된다. 대출을 받은 기업이 돈을 갚지 못하게 되면 신보가 은행에 대출금을 갚고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구조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재정건정성을 높이고 정부의 세수 확대에 기여할 목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업주들은 이 제도의 취약점을 악용했다. 신보의 B2B 대출 보증을 받은 구매기업이 인터넷에 개설된 중개업체 사이트(e-MP)에 매입과 매출 거래 내용과 전자세금계산서를 입력하면 손쉽게 대출이 이뤄지는 점을 노렸다. 업체 대표 등은 직원이나 가족 명의로 서류상회사(페이퍼컴퍼니)인 판매사를 설립해 가짜 거래 서류를 만들어 대출을 받아 가로챘다. 일부 부도덕한 업체들은 부도 직전에 집중적으로 허위 대출을 받아 빼돌리기도 했다.
실제로 식품회사인 A사 대표 양모씨(53)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실제로 없는 구매 내역을 만드는 방식으로 은행에서 170억원 가량을 대출받았다.
구매업체가 판매업체에게 ‘갑(甲)질을 해 허위로 거래서류를 만들도록 한 뒤 대출을 받아 가로챈 사례도 다수 적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른 업체 대표와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금액은 총 143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업체가 부도를 내는 등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보가 대신 은행에 갚아줘야 하는 돈(손실액)은 47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보는 B2B 구매자금 대출 보증에서 지난 6년간 6142억원 가량 손실을 입었다. 검찰은 이를 고려하면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동시에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신보 B2B 대출 보증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한 개선안도 관계기관에 제출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의 목적은 사기 대출을 받은 기업들에 대한 처벌에도 있지만 B2B, 구매자금 대출의 구조적 문제점을 파악해 고치려는 취지도 있다”며 수사 과정에서 파악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법무부 등 정부 관계기관에 건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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