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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호의 진짜투수] 투수, ‘우리를 흥분하게 하는 것들’과의 싸움
입력 2015-09-01 07:14  | 수정 2015-09-01 07:24
한화 에스밀 로저스가 29일 잠실 두산전에 앞서 경기전 훈련을 지도하고 있던 상대팀 두산 코칭스태프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평소 유쾌하고 친절한 매너를 보이고 있는 로저스는 27일 경기 중 볼판정 불만에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28일 엔트리 말소됐지만, 현재 1군과 동행중이다. 사진(잠실)=김재현 기자
지난주 리그에서 가장 쇼킹했던 뉴스를 꼽자면 한화 에스밀 로저스(30)의 엔트리 제외였을 듯하다. ‘휴식 차원이라고 하는데 한화가 워낙 빡빡한 5위 경쟁을 하고 있는데다 합류 이후 5경기서 3승(1패)을 따내며 이글스 마운드의 ‘천군만마 역할을 해내고 있던 로저스였기에 팬들의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컸다.
로저스는 엔트리 제외 하루 전날이었던 27일 창원 마산구장의 NC전에서 그의 KBO 5차례 등판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경기를 했다. 6이닝 3실점의 첫 패전이었던 기록도 그랬지만, 5회까지 1피안타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를 펼치다 6회 상대타자의 노 스윙 판정과 볼 판정에 격하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인 끝에 3실점으로 무너진 과정이 더 안타까웠다.
마운드 위 투수는 꽤 많은 고독한 순간을 견딘다. 내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승부, 타자와 포수와 심판이, 그리고 스탠드의 모두가 나의 손끝만을 쳐다보고 있는 순간. 투수가 던지는 모든 공은 그 긴장의 순간을 뚫고 던지는 회심의 1구다.
맞거나, 들어가거나, 혹은 빠지거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 공의 결과에 투수는 호수같이 고요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심판도 실수할 수 있고, 흥분해봤자 투수 스스로에게 좋을 일이 없으니까.
모두가 아는 대답은 그러하지만, 이게 어렵다. 순간적으로 화를 참기 힘들 때가 적지 않다. 보는 분들은 흔히 야수 실책이 나왔을 때 투수와 불편한 상황으로 엮기도 하는데, 사실 ‘우리 편의 실책에 감정관리가 안 되는 투수는 거의 없다. 괜찮은 척 하는 게 아니라 실제 투수들은 실책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쉽기는 해도 ‘화와는 다른 감정이다.
투수가 가장 화가 나기 쉬운 것은 역시 볼 판정이다. 특히 주자를 내보낸 상황에서 혼신의 힘으로 던진 결정구가 (들어간 것 같은데) 볼 판정을 받으면, (돌린 것 같은데) 노 스윙 판정을 받으면,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으로서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맥박수를 어쩔 수가 없다. 꼭 심판과 충돌하지 않아도, 투수는 이후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잔상 때문이다. 의식을 안 하려고 해도 머릿속에 자꾸 떠오른다. ‘아, 아까 그 공만 잡아줬으면……. 당하지 않아야 할 상황을 겪고 있다는 억울함이 끊임없이 멘탈을 흔들고 정상적인 투구를 어렵게 한다.

이 울컥한 화를 어떻게 관리해내느냐는 마운드 위 투수들이 이겨내야 하는 또 하나의 고독한 싸움이다. 호흡법도 괜찮은 응급처방이다. 순간적으로 심박수를 떨어뜨리는 데는 복식호흡이 효과가 있다. 배가 불룩해지도록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배가 푹 꺼질 만큼 숨과 함께 화를 뱉어내면서 스스로 평정심을 되찾도록 노력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순간적으로 화가 많이 나면 더 세게 던지려고 이를 악물기도 하는데 대부분 결과가 좋지 못하다. 펄펄 열을 내면서 ‘으이쒸와 함께 힘을 주면, 성급하게 투구의 예비동작 단계(스트라이드 구간)에 과한 힘이 들어갈 뿐, 막상 공을 뿌리는 단계에선 별 힘을 못 쓰는 식의 밸런스가 깨지는 상황만 벌어지곤 한다.
선수 시절, 나도 이러저러한 상황에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리기가 힘이 들었다. 특히 흥분하면 더 세게 던지려고 막 덤벼들다가 더 세게 얻어맞는 결과만 손에 쥔 적도 많았다. 참혹한 시행착오 끝에 ‘열 받은 후 다음 공에 대한 스스로의 해답을 정했다. 화가 많이 날 때마다 다음 공은 오히려 템포를 더 느리게 하고, 구종도 더 느린 것을 선택했다. 마인드컨트롤에 도움이 되면서 전반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었던 것 같다.
천성이 차분한 선수들도 있고, 와일드한 매력의 다혈질 선수들도 있다. 억울한 상황을 당했거나 플레이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더그아웃에 돌아와 분을 뿜어내야 좀 풀리는 선수들이 있는 가하면, 조용히 제자리에서 쌕쌕 삭여낼 수 있는 선수들도 있다.
그런데 선수들의 개성이 다양한 것처럼 감독들의 취향이나 소신도 다양하다. 더그아웃에서 분을 뿜어내면 분위기를 해친다고 엄하게 야단치시는 ‘감독님도 있지만, 차분하고 순한 선수들에게 화도 안날만큼 근성이 부족한가!”라며 호통 치는 ‘감독님도 적지 않다.
누군가의 눈에는 ‘난동이고 누군가의 눈에는 ‘파이팅인 그 어떤 경계에서 선수들은 끓어오른 화를, 순간적으로 폭발한 열을 다스리고 뱉어내야 한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답은 ‘열 받아서 페이스를 흩트려봤자 ‘결국 스스로 가장 손해다일 수 밖에 없겠다.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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