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C(일반 소비자시장) 보고는 간략하게, B2B(기업시장)는 최대한 자세하게
최근 LG전자 임원들의 암묵적인 지침이다. 최고경영자(CEO)인 구본준 부회장이 워낙 B2B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니 상대적으로 B2C 관련 보고는 핵심만 얘기하고 끝내라는 것이다. 반면 B2B 사업은 구 부회장이 엔지니어를 직접 불러 세세한 부분을 물어볼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LG전자의 B2B 사업은 대표적으로 차량용부품과 태양광 조명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꼽는다. 이 가운데 구 부회장의 애정을 듬뿍 받는 분야는 차량용부품을 생산하는 VC사업본부다. 2013년 7월 부품 설계 전문업체인 LG CNS의 V-ENS을 합병해 출범한 VC사업본부는 차량용 텔레매틱스 분야에서 세계 1위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다. 올 상반기에도 30.7%의 점유율을 기록해 2013년 이후 꾸준히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상반기 매출액이 8334억원으로 다른 사업부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성장성 만큼은 VC사업본부가 으뜸이다. 올 상반기에도 공장가동률이 99.1%로 TV부문(69.1%)이나 휴대폰부문(80.1%) 등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투자나 인력 등에서도 가장 공격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VC사업본부 지원을 위해 구 부회장은 최근 미국 디트로이트로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현지 자동차회사 임원들과 면담을 갖고 차량용부품 수출을 본격 논의한 것이다. VC사업본부는 최근 전기차 관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해 납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의 태양광 분야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태양광을 전기로 전환하는 모듈 효율이 15%인 범용 기술이 시장을 지배하다가 최근에는 18% 이상의 고효율 기술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고효율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LG전자로서는 물을 만난 셈이다. LG전자는 지난 6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 태양에너지 전시회 ‘인터솔라 2015에서 19.5%라는 세계 최고 모듈 효율을 달성한 신제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LG전자가 B2B 사업에 관심을 쏟는 것은 그동안 꾸준히 연구·개발(R&D)에 투자해왔기 때문이다. 2010년 10월에 취임한 구본준 부회장은 취임 이후 마케팅 인력을 줄이는 대신 R&D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지시했다. R&D와 제조 등 가전업체가 가져야 할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구 부회장의 경영신념이다.
이로 인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용은 매년 꾸준히 늘어났다. 취임 직후인 2010년 4.45% 수준이던 R&D 비용은 올해 상반기에는 50% 가량 늘어난 6.4%까지 올랐다. 특히 부진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 R&D 비용을 전년보다 0.2%포인트 늘렸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하라는 소신을 반영한 것이다.
LG전자 고위관계자는 물건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데 마케팅만 잘해서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 구 부회장의 경영관”이라며 꾸준한 R&D는 B2B 사업에서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LG전자의 행보는 일본 파나소닉의 변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2008년에 약 3800억엔(약 3조8000억원)의 적자를 낸 후 2011~2012년에는 연달아 7000억엔(약 7조원) 이상의 적자를 낸 파나소닉은 2012년 CEO 교체 이후 B2C가 주력이던 회사를 B2B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파나소닉은 기존의 디지털 전자사업을 과감히 구조조정하고 자동차부품과 2차 전지, 주택 에너지 효율화 장치, B2B 가전 등에 회사 역량을 집중시켰다. 2018년에는 매출 10조 엔(약 100조원), B2B 사업 비중 80%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감덕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GE와 히타치 지멘스 등 많은 전자기업들이 B2C에서 B2B 기업으로 변신했다”며 이는 원가경쟁력으로 무장한 중국 등 신흥기업들의 공세로부터 벗어나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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