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투란도트’ 에 넋잃은 브레겐츠의 여름밤
입력 2015-08-04 15:08 
오페라 투란도트

지난 2일 밤 9시(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하늘에 석양이 낮게 드리웠다. 보덴 호수 위에는 그보다 더 강렬한 붉은색 성벽을 세운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무대가 펼쳐졌다. 벽돌 335개로 이뤄진 성벽은 높이 27m에 길이 72m로 용 형상을 본땄다. 오페라 배경인 고대 중국을 표현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차용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성벽 가운데가 허물어지고 진시황 무덤 속 토용 144개가 나타났다. 무대 아래 호수에도 토용 61개가 절반쯤 잠겨 있었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오르골(음악 상자) 뚜껑을 열면 ‘투란도트 주요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가 이 오페라의 영감을 얻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다.
‘호수 위 오페라 답게 투란도트 공주는 수많은 등을 밝히고 베일에 싸인 배를 타고 등장했다. 또 다른 배에는 사형을 앞둔 외국 왕자가 서 있었다. 그는 공주에게 청혼하려고 수수께끼에 도전했지만 실패하는 바람에 사형을 당한다.성벽 꼭대기에서 참수된 후 목이 잘린 채 호수 위로 던져진다. 물론 마네킹이다.

투란도트는 이방인 남자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잔인한 방법을 동원해 결혼을 피한다. 그의 공포 정치를 상징하기 위해 스위스 연출가 마르코 아르투로 마렐리는 중국 공산주의를 무대 위로 끌어왔다. 합창단이 중국 인민복을 입고 노래를 부른다. 황제와 신하 핑, 팡, 퐁은 중국 전통 의상 차림이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오페라로 중국 무술과 불쇼, 서양 양복과 드레스를 입은 파티가 동시에 벌어진다.
무대 한 가운데가 열리고 대형 스크린에서 다채로운 영상이 펼쳐져 장관을 이뤘다. 칼라프 왕자가 수수께끼 정답을 맞추면 성벽에서 한자를 쓴 대형 천이 내걸린다. 얼음처럼 차가운 투란도트 공주의 마음이 녹고 칼라프를 받아들이는 순간에 대형 분수쇼가 대미를 장식했다. 관객 6980명의 환호 속에서 호수 오페라 막이 내렸다. 알프스 산맥 빙하가 녹은 보덴 호수와 노을에 물든 창조적 오페라 무대,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성악가들의 절창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여름밤을 만들었다.
이날 공연에 활력을 불어넣는 조연인 퐁 역으로 한국인 테너 김경호 씨(33)가 활약해 갈채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그는 청아하고 화사한 음색과 익살스러운 연기로 주목을 받았다. 핑, 팡, 퐁은 투란도트 공주에게 청혼하려는 이방인들을 만류하고 사형 후 뒷처리를 담당한다. 주인공 못지 않게 자주 등장하며 비중 높은 역할이다.
지난달 22일 개막해 23일까지 계속되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예산 2000만 유로(약 260억원)를 투입한 대형 오페라 무대로 세계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인구 2만명에 불과한 이 소도시에 전세계 관람객 25만명이 몰려오며 인근 카지노와 호텔, 상점이 누리는 경제 효과는 2000억원에 달한다
1945년 시작된 이 축제 성공 비결은 치밀한 무대 제작과 공격적인 마케팅이다. 물과 바람에도 버틸 수 있는 무대 세트를 12개월 동안 제작한다. 전나무 지지대 119개와 길이 6m 강철 파이프를 호수 바닥에 깊숙이 박는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스위스, 루마니아 무대 제작업체 40개사가 동원된다.
야외 공연이기 때문에 확성장치(마이크)를 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음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대 곳곳에 스피커 59개를 설치해놓고 70년 야외 오페라 관록으로 최상의 감상을 도와준다.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아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물량 공세로 상상을 초월하는 오페라 무대를 만들며 홍보 전략도 진취적이다. 2008년에는 영화 007 시리즈 ‘퀀텀 오브 솔러스 촬영지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무대를 내줬다. 거대한 눈동자 영상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 박진감 넘치는 총격신이 펼쳐졌다. 영화 홍보 덕분에 티켓 수입이 2007년보다 148% 늘었다.
페스티벌 극장 안(1600석)에서도 오페라를 공연한다. 올해는 오펜바흐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를 공연하고 있다. 좌우로 갈라지는 계단식 무대와 혁신적인 연출로 화제가 되고 있다. 브레겐츠 호수 오페라는 2년마다 작품을 바꾸기 때문에 ‘투란도트는 내년에도 계속된다.
브레겐츠 페스티벌 출발 당시에는 배에서 호수 위 공연을 관람하다가 축제 극장 외부 계단 객석으로 옮겼다. 축제 극장은 1980년 건립됐으며 2006년 리모델링을 거쳤다. 브레겐츠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스위스 국경에 인접한 도시다. 뮌헨이나 취리히에서 기차를 타고 2~3시간 가면 도착한다.
[브레겐츠(오스트리아) =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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