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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나운서] 유영미, 보헤미안으로 돌아오다
입력 2015-07-29 13:09 
디자인=이주영
‘아나운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말 잘하는 사람, 혹은 아나테이너죠! 그러나 이들의 ‘진짜 사는 얘기는 얼마나 알고 있나요? 똑 부러진 이미지의 아나운서가 아닌 인간적인 면모를 ‘키워드로 보여드립니다. 이들의 얘기에 ‘아(AH)!하고 무릎 탁 칠 준비됐나요?<편집자 주>


[MBN스타 이다원 기자] 처음 취재진 앞에 등장한 SBS 유영미 아나운서는 ‘파격 그 자체였다. 늘 뉴스에서 고고하면서도 단정하게 진행을 이끌었던 ‘직사각형 같은 아나운서는 온데간데 없고 블루 아이셰도와 긴 웨이브 머리가 눈에 띄는 자유로운 영혼이 앞에 서 있었던 것.

좀 놀랐죠? 근 30년간 착하고 단정하게 살았으니 이젠 좀 내 모습 찾아도 되잖아요?”

소신이 뚜렷하고 자신을 정말 사랑했던 유영미 아나운서의 지난 30년 방송인생과 현재 아름다운 보헤미안으로 살아가는 삶은 그야말로 180도 다른 방향이었다.



◇ 키워드 총평 : 자유로운 영혼, 유영미

키워드1. 30년 전 유영미 아나운서에게

아나운서를 시작한지 벌써 30년이 되네요. 1986년 울산 MBC 아나운서로 처음 시작해서 SBS 공채 1기로 옮긴 뒤 정말 쉼 없이 달려왔던 것 같아요. 입사 초 유영미는 정말 멋모르고 겁 없는 아이였죠. 세상에 대한 저항정신,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죠. 당시는 여자 아나운서는 결혼하면 그만둔다고 각서를 쓸 때라 그런 악습에 굉장히 분노하기도 했어요. 20대 여대생에게 좌절감만 주는 세상이 어딨냐는 분노로 30년을 버텼던 것 같아요. 아이 낳고 다시 뉴스로 복귀한 여자 아나운서는 제가 처음일 걸요?”

키워드2. 독한 워킹맘

말 그대로 독한 워킹맘이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어찌됐든 남자 아나운서와 경쟁하며 오래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만이 간절했다는 그다.

사진=SBS


임신 9개월 만삭 될 때까지 뉴스석에 앉았어요. 어차피 책상 아래론 카메라에 안 잡히니 오래 갈 수 있었죠. 아이 낳고 딱 두 달 쉬었어요. 바로 뉴스로 복귀했죠. 당시 아줌마가 뉴스 앵커 자리로 다시 복귀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는데 회사에 감사한 일이었죠. 독하다고요? 독하지 않으면 어떻게 뉴스를 20년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키워드3. 앵커 명예졸업

지난 2011년 12월30일은 그가 잊을 수 없는 날짜다. 오랫동안 진행하던 뉴스석에서 내려와 후배들에게 영광스러운 꽃다발을 받았다. 앵커, 명예졸업합니다”란 그의 말은 당시 깊은 인상을 줬다. 최장기 여성 앵커의 마지막이었다.

아름다운 순간이었죠. 시원섭섭했어요. 그만 두는 날 옆에 있던 앵커에게 ‘내 눈과 마주치지 말라고 일러뒀죠. 안 그러면 지난 시간이 확 지나가면서 눈물이 터질 것 같았거든요. 마지막까지 담담하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고 의미있는 코멘트를 하고 싶었죠. 그래서 나온 말이 ‘명예졸업이었어요. 뉴스 진행하면서 한번도 사견을 내비친 적 없는데 그때가 처음 내 목소리를 낸 거였죠. 주위에서 굉장히 찡했대요.”

사진=본인 제공


키워드4. 제2의 인생, 시니어

이후 그의 삶에서 중요한 화두는 ‘시니어(노인)였다. 시니어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SBS 러브FM ‘마음은 언제나 청춘을 오랫동안 진행해오면서 시니어의 삶에 대해 집중하게 됐고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노인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시니어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멈춰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한민국 시니어들이 뭘 해야 행복한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라디오 속에서도 이런 걸 많이 녹이려 노력하죠. 선곡도 희망을 주제로 하고 있어요. 젊은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게요.”

키워드5. 연극으로 외도

작년 11월엔 친구들과 모여 연극을 제작·출연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패션쇼가 바로 그 작품이었다. 각자 딸들과 크리스마스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모녀 사이 갈등이나 서로 생각 차이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담겼다.

아나운서로서 예능 프로그램을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이미지 때문에 한 번도 못 했어요. 그래서 연극 출연 기회가 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죠. 저희 친구 모임이 있는데 당시 인생이 참 재미없다는 얘기가 오갔죠. 누군가 ‘연극이나 해볼까 제안했는데 그게 이렇게 커진 거예요. 또 딸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이렇게 살아왔다고 얘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죠. 열심히 준비해 무대에 올렸는데 반응이 참 좋았어요. 융복합공연예술축제 ‘파다프에도 초청받았죠. 예술극장 대극장이란 꿈의 무대까지 설 수 있었다니까요.”

사진=본인 제공


키워드6. 딸 선재, 엄마 유영미

이 연극을 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딸 선재와 비로소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함께 출연하고 대본을 정리하면서 소통과 힐링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는 것.

딸이 하나였지만 늘 제겐 일이 우선이었어요. 아줌마 아나운서로서 투쟁하는 게 제 삶이었죠. 그러다 보니 딸과 함께할 시간이 그닥 많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 연극 참여가 정말 좋은 기회였죠. 대부분 딸이 바라본 엄마는 늘 비판적이고 ‘여자로 생각 못 하잖아요? 이 연극을 함께 하면서 선재도 절 많이 이해하고 저도 딸을 많이 이해하게 됐어요. 어쩌면 여자로 본 ‘엄마가 불쌍해 보였을 수도 있고요. 연극이 끝나니 왈칵 눈물을 쏟대요? 하하.”

키워드7. 50대 버킷리스트

이제 여유를 지니며 본래 성정대로 즐기며 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나운서로서 후회없는 삶을 산 그에게 또 하나 이루고픈 버킷리스트를 물으니 낭만적인 미션이 되돌아왔다.

프랑스 산티아고에 까미노란 길이있어요. 33일을 꼬박 걸어야 완주할 수 있는 곳이죠. 요즘 소원이 있다면 그곳에 가는 거예요. 발이 부르터도 좋으니 그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죠. 오랫동안 걸어서 완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호호.”

[유영미는 누구?] 1986년 울산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방송가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1991년 SBS 공채 1기로 입사해 2002년 한국 아나운서 대상 클럽상 수상하는가 하면, 2005년에는 라디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을 오래 진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이스 오브 SBS(VOICE of SBS)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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