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근호 I 장소 제공=르타오(Le Tao)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함께 비를 맞잔다(무지개 뜨기 전·이하 괄호 노래 제목). 하늘하늘한 치마에 노란 구두를 신고 유혹하듯 사뿐히 걸어가(얄미운 나비인가봐)는 그대에게. 메말라 증발할 것 같으니 입술을 적셔달라(사막탈출)고도 했다. 풀리지 않는 물감처럼 서로 엉켜 하얀 침대를 어지럽히고서는(렛미인), 잘 자라고 내 옆에 누워 말해달라(둘이서)고 노래한다.싱어송라이터 유근호가 약 2년 만 새 앨범을 최근 발표했다. '유재하 가요제' 출신답다. 그의 노래는 들었을 때 그림이 그려진다. 동화 같은 풍경에서 가슴을 뛰놀게 한다. 때로는 에로틱하다. 촛불 하나 켜진 작은 방으로 듣는 이를 이끌어 등을 쓰다듬는다.
장소 제공=르타오(Le Tao)
여성 팬 김은혜(28) 씨는 유근호의 음악을 두고 치즈 케이크를 닮았다고 추천했다. 달콤하지만 자극적이지 않다. 음악을 통해 사랑을 속삭이는 그의 고백은 느끼하거나 끈적이지 않고 촉촉하다. 겹겹이 쌓인 치즈 레이어드 사이 생크림은 한 입 베어물면, 눈처럼 녹아 한 순간에 퍼지는 포근한 우유향이 난다."타이틀곡 '얄미운 나비인가봐'는 생크림이 조금 더 들어간 노래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억지로 단맛을 내려고 하진 않았어요. 중독성이 강하거나 단숨에 입맛을 사로잡을 만큼은 아닙니다.(웃음) 너무 달면 금세 질리잖아요. 제가 자연스럽게 잘 스며드는 범위 안에서 달콤함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유근호는 서정의 힘을 믿는다. 두 장의 앨범으로 단정할 순 없으나 그는 충분히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기타를 둘러멘 음유시인의 등장은 오디션 프로그램 작가들이 탐낼 만 했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만 세 번의 섭외 요청 전화를 받았다. 이제 가수 인생 걸음마 단계인 그로서는 쉽게 매스미디어의 주목을 끌 수 있는 기회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무지개가 뜨기 전(앨범명), 내리는 비쯤은 맞으며 견뎌내기로 했다. '우산은 버려요. 숨지 말아요. 그냥 빗속을 걸어요. 같이 걸어요'라고 다짐했다. 인디 뮤지션들이 자주 듣는 말 중 하나인 '너는 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느냐'는 물음 속에서다.
"짜여진 판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여겨지는 반강요식 분위기가 아쉽습니다. '이것이 좋은 음악이야'라고 선별하는 사람(심사위원)이 정해져 있고, 그 분들 말 한 마디 영향력은 막강하잖아요. 결국 그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들이 자생하기에는 힘든 환경이죠.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 여부는) 개인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요소가 있을 수 있는데 특정 잣대에 맞춰질수록 각자의 개성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수 유근호 I 장소 제공=르타오(Le Tao)
유근호의 정규 1집은 다소 어둡고 우울했다. 치즈 케이크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 맛이 진했다. 표면은 꾸덕꾸덕했다. 이번 그의 새 앨범 수록곡들은 훨씬 부드럽고 달달해 대중의 구미를 당긴다. 생크림 층을 얇게 한 단 얹은데다 로즈 샴페인을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이다. 살짝 톡 쏘는 샴페인의 탄산이 느끼함을 향긋하게 씻겨주면서 청량감을 더한다. 단, 주의가 필요하다. 홀짝 홀짝 마시다가는 어느새 취한다. 그의 음악이 그렇다.그는 "치즈 케이크와 로즈 샴페인의 어울림처럼 제 노래도 들으시는 분들 귀에 사르르 감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물론 이러한 바람이 그의 음악적 지향점은 아니다. 유근호는 "사실 진중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의 제 음악이 20·30대 여성이 좋아할 만한 치즈 케이크라면, 우리네 어머니들이 언제 들어도 맛 있는 '백반'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쌀밥 한 공기에 반찬 몇 가지 놓인 밥상. 소박하지만 가장 기본에 맞닿아 있는 음악이 그런 것 아닐까요? 삶에 의미를 담담히 담아내면서 다양한 맛을 내는 음악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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