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서울 시청 일대 1000개의 공항을 걸어볼까
입력 2015-07-23 14:37 
<출발>

250m만 가면 1000개의 플라토 공항이 나옵니다.”
서울 시청역에서 태평로 삼성생명으로 걸어가는 사이 큼지막한 녹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가 ‘이게 뭐지 하고 다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도심 속 공항이라고? 1000개의 플라토 공항이라니?
한참을 걷다가 삼성생명 건물에 도착하자 비행기 출발을 알리는 검은색 전광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때서야 새 전시 컨셉을 알리는 이색 설치물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전시 티켓은 보딩패스처럼 길쭉하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카트가 일렬로 늘어 서 있다.‘작품을 보려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일련의 모든 과정이 공항의 요소를 담고 있다. 도심 미술관 속 낯선 공항 풍경은 북유럽 출신으로 듀오 작업을 펼치는 마이클 엘름그린(54)과 잉가 드라그셋(46)이 ‘천개의 플라토 공항전에서 연출한 것들이다.
현금 인출기 앞에는 아기 모형이 바구니에 누워 있는데 마치 현대판 모세를 상징하는 것과 같다. 작품 제목도 ‘모던 모세다. 이 공간은 당신의 것일 수 없다”는 냉정한 문구가 벽에 걸려 있고, 누구도 찾지 않는 검은색 가방의 수하물이 수하물벨트에서 빙빙 원을 그리고 있다. 가지 않는 시계는 초침만 돌아갈 뿐이다. 덴마크의 상징 인어공주의 남자판 버전이 버젓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로는 23번 게이트로 가는 계단이 있는데 그만 부서져서 올라갈 수가 없다.
전시 제목 ‘천개의 플라토 공항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저서 ‘천개의 고원(플라토): 자본주의와 분열증의 가져온 것으로 분열증적인 현대 사회를 은유한다. 엘름그린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많은 가치의 갈등과 불안함 속에서 살고 있다. 통제와 계급이 있는 공항은 미래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2013~4년 방한한 이들은 유리와 철로 된 플라토 미술관을 본 뒤 외관이 유리로 지어진 공항과 유사점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공항은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욕망과 기대, 자유, 좌절과 소외, 규제를 느끼는 공간인 것이다. 안소연 플라토 부관장은 영토의 안과 밖, 출발과 도착의 경계지점에 놓은 관람객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다는 점에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검색과 통제 시스템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끊임없는 지연과 기다림만이 남는 공항안 시간은 죽은 시간”이라고 평했다.
20여년간 작품활동을 함께 해 온 두 사람은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받았고 2012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공공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드라그셋은 나는 연극을 했고, 엘름그린은 시인이자 비주얼 아티스트였는데 타협점이 현대미술이었다”고 소개했다. 장르의 융합과 통합이 현대미술의 키워드라면 이들은 그 중심부에 있는 셈이다. 두 사람은 이전에도 미술관을 병원이나 개인 저택으로 바꿔놓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들은 또 덴마크 관광 명물 1호인 인어공주가 2010년 상하이엑스포에 생애 첫 나들이를 했을 때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들은 예술이 예술처럼 보이지 않는 걸 추구합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모호한 상황에서 예술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봐요.”
이들의 작품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곱씹을 수록 전복의 의미가 남다르다. 휴가철 공항에 가지 못한다면 ‘플라토 공항에서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는 10월 18일까지. 1577-7595.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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