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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사태가 남긴 과제] ① 경영권 보호 장치 전무…포이즌필·차등의결권 대안 부상
입력 2015-07-17 13:44 

# 우리도 몇년 전에 국내 한 사모펀드로부터 적대적 M&A가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보유 지분이 5%가 넘었다고 공시하더니 경영에 참여하겠다면서 멀쩡한 임원을 짜르라고 하고 회사 재산을 매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를 거부하자 주주가치를 외면한다면서 맹비난을 시작했습니다. 사재를 털어서 자사주를 더 사들이려고 했는데 주가가 급등해서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 코스닥 상장사 A 대표
국내 1위의 삼성그룹과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간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삼성물산 주주총회가 결국 삼성그룹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국내 최대의 산업자본인 삼성조차도 해외 투기 자본의 공세에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증권가에서는 엘리엇 사태를 계기로 투기자본에 맞서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는 방어 수단이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주주 설득 작업 말고는 답이 없다
경영권 분쟁에는 일반적인 수순이 있다. 일단 공격하는 쪽에서 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게 되면 공시가 뜨게 되는데 지분 매입 목적을 ‘경영 참여라고 밝힌다. 이후 현 경영진이 무능력하고 주주가치 제고에 관심이 없다면서 다른 주주들의 참여를 촉구한다. 그리고 사측에 주요 자산 매각, 경영진 교체 등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하고 경영진이 이를 거부하면 반대 목소리를 더욱 높인다. 주주총회에서 양측의 충돌이 벌어진다. 주총이 끝나도 소송전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공격이 잠잠해지고 잠시후 ‘주주 가치 제고를 외치던 투기 자본은 소리 없이 지분을 정리하고 떠난다.
엘리엇도 비슷했다. 지난달 3일 처음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목소리를 낸 후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현물배당을 요구했다.

문제는 이같은 해외 투기자본의 공세에 국내 상장사가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삼성측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신문에 광고를 내면서 다른 주주들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
해외 자본보다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을 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매입해도 무용지물이다.
대주주가 직접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해야 하는데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경영권 분쟁 조짐이 보이는 순간부터 주가가 급등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주가도 엘리엇이 반대 의사를 밝힌 뒤 불과 3거래일 만에 6만3000원에서 8만원까지 27.6% 급등했다.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은 10조원 수준으로 지분율 1%를 올리는 데에만 1000억원이 필요하다. 대주주가 시장에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주식을 많이 매입해도 재무구조는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대주주가 어느 정도 자금력이 있다고 해도 지분 매입 경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대주주까지 나서서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하면 주가급등이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기 때문이다. 주가가 오르면 오를 수록 투기 자본의 공세는 강해지고 또 장기화될 수 밖에 없다.
증권가 관계자는 그룹 소속 상장사의 평균적인 최대 주주 지분율은 35% 수준인데 외국인 지분율이 50%가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라며 창업 초기에 이곳저곳에서 투자를 받아 대주주의 지분율이 20% 수준 밖에 안 되는 중소형 상장사들은 자금 여력도 없어 외부의 공격이 들어오면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가 문제라고도 하지만 2006년 칼아이칸의 공격을 받았던 KT&G는 2003년부터 매년 기업지배구조 모범기업상을 받았던 곳으로, 1800개 상장사 모두가 적대적 M&A의 대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포이즌필·차등의결권 국내 도입 필요
경영권 방어를 위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제도는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제도, 차등의결권주식 제도 두 가지다.
포이즌필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기존 주주들에게 싼 값에 주식을 대량매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적대적 M&A 공격이 들어올 경우 이 권리를 행사해 대주주가 자신의 지분율을 더욱 높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포이즌필 제도의 장점은 비상시에만 신주인수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아무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대적 M&A에 나서려는 쪽에서도 포이즌필 제도에 대한 부담 때문에 공격을 꺼릴 수 밖에 없어 예방적 효과도 있다. 높은 경제성이란 장점 때문에 기술력이 높은 대신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중소형 상장사들이 특히 선호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주식수가 늘어 주가가 떨어질 위험을 안고 있어 주주가치 측면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된다. 이 제도를 ‘독약(Poison Pill)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0년 정부입법으로 포이즌필의 국내 도입이 추진됐지만 결국 무산된 바 있다.
차등의결권 제도도 경영권 방어 도구로 자주 언급된다. 현행 상법은 보통주 1주당 1개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는 대신 배당을 더 많이 받는다. 차등의결권주는 주식 1주당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의 수를 달리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즉 어떤 주식은 1주당 1표만 행사할 수 있고, 어떤 주식은 1주당 10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신 배당 등 주주 보상에도 차등을 두게 한다. 이렇게 되면 대주주는 배당을 적게 받더라도 의결권이 많은 주식을 보유하게 되고 다른 주주들은 의결권이 적더라도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주식을 택하게 된다.
차등의결권제도가 최근 주목받게 된 계기가 있다. 중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홍콩 증시 상장을 추진하다 홍콩거래소측이 ‘1주 1의결권 정책을 고수하자 결국 차등의결권제도가 있는 미국 증시에 입성하게 된 사건이다. 이는 경영권에 대한 상시적 불안이 있는 자본시장을 바라보는 글로벌 우량 기업의 시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차등의결권제도도 지난 2006년 의원 입법으로 국내 도입이 추진됐지만 경영진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소액주주를 차별한다는 반대여론에 밀려 좌초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경영진을 과도하게 보호한다고 하지만 이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과거 순환출자나 상호출자로 가공의 자본을 만들어 경영권을 방어했던 방식에 비해서는 분명히 진일보된 게 사실”이라며 경영권 분쟁으로 회사의 경영이 마비되고 사업확장에 쓰여야 할 자금이 경영권 방어에 사용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실보다 득이 많은 제도”고 말했다.
[매경닷컴 고득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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