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 폭의 그림’ 같은 독서하고 싶다면 이 책을
입력 2015-07-14 16:17 

‘쪽배의 노래는 2003년 장편 ‘미친 사랑의 노래 이후 홀연 사라졌던 김채원(69)의 귀환을 알린 소설집이다.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12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소설집은 공백기를 어렴풋이 짐작케 해준다.
‘서산 너머에는(2002년)의 화자 ‘나는 뉴욕에 사는 사촌과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 받는다. 너는 월계수 옆 샘물 위로 둥그런 해가 떠오르는게 좋으니? 눈이 온밤 반가운 손님이 온게 좋으니? 사촌과는 여전히 묻기놀이를 잘한다. 어린 시절 한집에서 자랐고 이런 묻기놀이를 하며 지내던 긴 밤을 공유했던 탓이다. 사촌은 6·25때 폭격으로 어머니와 형제들을 잃었고, 나 또한 아버지를 잃었으니 정서도 닮아있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소포를 보내는 건 이런 놀이의 연장이었다.
간헐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던 어느날, 뉴욕에선 9·11 테러가 일어났다. 출근하던 조카는 비행기가 빌딩 속으로 들어가 박히는 것을 눈 앞에서 목격했다. 테러 이후 둘의 통화는 더 잦아졌다. 타지에서 남편을 사별하고 식품상을 하며 아들을 키우다 흑인 강도에게 두번이나 강간을 당한 사건을 뒤늦게 짐작하게 되면서 나는 사촌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 나무가 지구에 뿌리를 박고 살아간다기보다 오히려 나무 자체가 지구를 품어안고 있는 것 같았어.” 나는 사촌을 만나러 해가 지는 서쪽 나라로 가봐야겠다고 문득 생각한다.
8년의 침묵 끝에 발표한 ‘등뒤의 세상(2010년)은 자신의 집을 살아있는 무덤으로 여기는 여자의 이야기다. 재래시장, 빽빽한 아파트 단지를 정처없이 헤매다 빵집에서 봉변을 당한다. 도시의 삶의 지난하다. 자고일어날때마다 가시지 않는 심장의 통증과 함께 사는 여자는 어린 시절의 성터를 떠올한다. 성터에는 늘 바람이 많았다. 들판에 흔들리는 꽃을 보며 소녀는 성벽 아래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엔 누가 살까 궁금했다. 그 눈앞의 마을에 살고 있는건 괴물이 되어버린 지금의 자신이다.

작가는 언니인 소설가 김지원을 떠나보낸 뒤 2년만에 이 책을 묶었다. 그래서인지 소설에는 혼자만이 감당해야할 슬픔의 묘사가 짙다. 풍성한 색감으로 눈앞에 그 정경을 그린듯한 회화적인 언어감각과 김채원의 소설세계를 특징짓는 여성인물의 자의식은 이 소설집에서도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표제작 ‘쪽배의 노래는 가장 이질적이지만,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는 이야기다. 화자는 봄날 저녁, 전쟁 귀향자인 오빠가 들려주던 영화 이야기를 회상한다. 옛집은 흘러간 쪽배였다. 이것이 이름하여 추억이라는 것인가. 밤을 건너 그 쪽배가 온다면… 혼비백산하여 떠나갔던 유년의 그 배가 깊은 밤을 건너와준다면….”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김채원의 소설은 얼핏 별다른 문학적 장치 없이 쓰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떠받치는 섬세한 미학적 구도를 숨기고 있다. 그 위에서 마음의 흐름을 받아적듯 써나가는 자연스러움이 묘한 소설적 균형을 만들어낸다”고 찬사했다.
작가는 1946년 경기도 덕소 출생으로 197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겨울의 환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소설집 ‘초록빛 모자‘봄의 환, 장편 ‘달의 강 등을 펴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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