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이란 핵협상 타결엔 ‘케리·자리프’ 쌍끌이 있었다
입력 2015-07-14 16:12 

이란 핵협상 최종 타결에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사진·72)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사진·55)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컸다. 전략과 인내심을 가지고 협상에 임한 두 사람이 있었기에 미국과 이란이 각각 나름의 명분과 실리를 챙길 수 있었다고 외교가는 평가하고 있다.
협상 과정에서 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날선 공방을 주고 받았다. 케리 장관이 협상이 결렬 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으면, 자리프 장관이 트위터를 통해 물 한가운데서 말을 바꿔 탈 순 없다”고 받아치는 식이었다. 하지만 협상이 없을 때는 함께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등 물밑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또 자국 보수파 시달림에 당하는 동병상련 처지도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뢰감 형성에 한몫 했다. 심지어 케리와 자리프 장관은 최종 협상을 앞두고 각각 대퇴골 골절상과 허리 통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전세계를 돌아다닌 케리 장관은 예일대(정치학)와 보스턴대 로스쿨에서 공부했다. 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지만 조지 부시 후보에 밀린 그는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 후 2013년 1월부터 국무장관을 맡고 있다. 취임 후 1년 간 39개국을 순방하며 152일을 해외에서 보내 ‘발로 뛰는 장관이란 평을 얻었다.

이란측 핵협상 대표로 나선 자리프 장관은 자국서 영웅대접을 받게 됐다. 지난 스위스 로잔에서 잠정 합의안 발표 후 귀국 했을 때도 그를 위한 카퍼레이드가 열렸고, 이란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며 고마워요 자리프”를 연호한 바 있다.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 간 자리프 장관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샌프란시스코주립대에서 국제관계학 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덴버대에서 국제법과 정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 2013년 집권에 성공하자마자, UN주재 대사를 지냈고 각종 대미(對美)협상 대표 경험이 있는 그를 외무장관에 임명했다.
그는 다양한 외교 경험과 전략을 바탕으로 협상 상대인 ‘P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에 밀리지 않고 이란의 이익을 최대한 지킨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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