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역대 벤처회장들의 일성 “경제난국 솔루션 벤처 외엔 없다”
입력 2015-07-13 16:34 

한국 벤처를 대표하는 벤처기업협회가 출범한지 올해로 정확히 20년을 맞았다. 벤처기업은 앞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기대가 있지만 아직도 풀어야한 숙제도 많다. 매일경제는 벤처기업협회 20년을 맞아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장흥순 블루카이트 대표,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등 한국의 벤처 1세대이자 역대 벤처기업협회장들을 초청해 한국 벤처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지난 12일 서울 도곡동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모인 이들은 경제 성장이 정체된 지금이야말로 제 2의 벤처 붐을 일으킬 적기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2000년대 초 1차 벤처 붐 수준에 이르려면 몇 가지 선결 과제를 풀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 박근혜 정부 들어 쏟아지고 있는 각종 벤처 정책을 평가한다면.
▶이민화 이사장(1, 2대 협회장)=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 ‘창조라고 본다면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정책을 앞세운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본다. 지난 3년을 보면 대학 졸업 후 창업을 하는 숫자는 약 5배 이상 늘었고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하는 기업 수나 질도 높아졌다. 창조경제 실질적 성과를 거두려면 시장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지난 9일 내놓은 투자활성화 대책을 보면 이 부분에 방점이 찍힌 것을 알 수 있다. 스톡옵션과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고 코스닥시장을 분리하는 등 전략적 방향은 잘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정책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는 부분을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M&A 관련해서는 대책이 나와도 실제 시장이 열릴지 의문이다. 기술거래소를 폐지해 우수 기술이 제대로 가치평가를 못받고 상업화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가정신 의무교육을 하는데 예산 배정이 전혀 안 돼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 정부가 시장창출, 인재육성에 대한 방향은 잘 잡고 있지만 실천 과정은 오합지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벤처 정책에서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하나.

▶이 이사장= 결국 벤처기업이 잘 되려면 자금이 들어와야 하는 것인데 자금을 투자하는 이유는 돈 벌려고 하는 것인데 과연 어디서 벌 수 있을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결국엔 코스닥에서 회수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원활하게 되지 않고 있다. 한 때는 코스닥에 상장하는 기업이 200개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30여개로 줄었고 코스닥까지 가는데 평균 기간이 7년에서 14년으로 늘었다. 투자자들에게 14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조현정 회장(6대 협회장)=앞으로 자본시장을 육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많은 벤처기업들이 새로 생겨나고 없어지기는 다산다사식 구조로 가야한다. 그래야 우수 기업들도 많이 생겨날 수 있다. 벤처기업을 평가할 때도 당장 매출과 수익이 얼마인지 보는 구조가 아니라 미래가치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가령 소프트웨어 분야를 보면 가치를 지나치게 투입 원가에 두고 있다. 어느 등급의 기술자 몇 명이 얼마동안 일해서 생산한 것인지 따져 댓가를 지급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우수 인력이 나올 수 없다. 창조적인 개발자가 일반 개발자 몫의 수십배를 할 수 있는데도 개발기간과 연차에 따른 등급으로 분류해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창조적 인재를 키우려면 소프트웨어의 창조성과 가치에 대해 제대로 값을 매겨야 하는데 모든 산업에서 여전히 이런 관행을 적용하고 있다. 향후 10년 안에 벤처기업을 10만개 더 늘린다든지 국가차원에서 드라이브를 걸어야 글로벌 벤처 기업도 생겨날 수 있다. 그런 수적인 목표를 갖고 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황철주 회장(9대 협회장)=한국은 실패와 실수를 구분하지 못하는 나라다. 실수를 많이 한 기업인들이야 말로 대한민국을 기술 강국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인데 한 순간의 실수 때문에 이들을 영원이 매장하는 분위기가 문제다. 연대보증은 물론 대출 위주의 현행 투자의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 벤처협회 출범 5년여 만에 벤처가 꽃 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이사장=1차 벤처 붐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오기 전에 벤처기업협회 설립을 준비했고, 그러면서 벤처기업특별법을 만들었다. 이때 코스닥 시장도 등장했다. 약 4개월 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대기업 소속 인력들이 빠져나왔고 이들이 자연스럽게 벤처기업으로 유입됐다. IMF 극복을 위해 그 당시 집권했던 김대중 정부가 정책적으로 벤처를 지원한 것도 한몫했다. 벤처 붐은 협회차원의 노력, 대통령의 벤처육성에 대한 의지, 벤처기업인들의 사전 준비가 어우러져 최고 벤처 생태계를 만든 기적이었다.
- 현재 한국의 벤처기업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이 이사장=한국의 벤처 총 매출액은 이스라엘 GDP보다 많은 수준이고 1인당 벤처 기업수도 더 많다. 비록 지난 2001년 이후 10년간의 벤처 빙하기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벤처캐피탈 투자액은 전 세계 4위권 수준으로 매우 높다. 국가 경제에 벤처기업이 기여하는 정도는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같이 이미 벤처기업을 졸업한 곳과 현재 등록된 3만여개 벤처의 총 매출액은 약 350조원에 달한다. 연간 부가가치 창출 규모는 130조원 수준에 이른다. 만일 벤처가 없으면 경제성장률 2%를 지키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본다.
- 최근 벤처기업이 다시 활기를 보이고 있는데 어느 정도 회복됐나.
▶황 회장=2000년대 초 버블 붕괴 전 미국 나스닥 지수가 5000포인트 수준이었고 코스닥은 최근 지수로 환산하면 당시 2830포인트까지 갔다. 나스닥은 5000선을 회복했다. 반면 코스닥은 700포인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점에 올랐던 시기와 비교해 불과 4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장흥순 대표(3~5대 협회장)=2000년대 들어 벤처기업협회장을 맡게 됐는데 2000년 3월 최고점을 찍고 6개월 사이에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IT버블이 붕괴되면서 한국의 코스닥 뿐만 아니라 나스닥 등 전 세계 시장이 동시에 폭락했다. 1999년부터 짧은 시간동안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골이 깊어진 측면도 있다.
[사회 = 장박원 중소기업부장 / 정리 =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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