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월호·메르스서 교훈 얻었나?···‘재난, 그 이후’ 출간 주목
입력 2015-07-10 11:37 

재난은 기별없이 찾아온다. 준비없이 맞닥뜨리면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되어버린다. 2005년 8월 미국으로 날아온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그랬다. 1800여명의 사망자와 1000억 달러가 넘는 재산피해를 남겼고 도시는 약탈이 난무하는 무법천지가 됐다. 스팬퍼드대 의학 박사인 의학 전문 기자 셰리 핑크는 이 당시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에서 벌어진 일을 추적했다. 당시 의사 몇명은 일부 환자를 안락사시켰다는 이유로 기소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혼돈의 5일 동안 벌어진 일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핑크는 수백명과 500회 이상 인터뷰를 했다. 당시 현장에 있진 않았지만, 2007년부터 2년에 걸친 취재끝에 그는 ‘메모리얼의 치명적인 선택이란 기사를 프로퍼블리카와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동시 게재해 미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뱁티스트란 애칭으로 불리던 이 병원은 오래동안 뉴올리언스에서 재난 상황 속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였다. 1927년 이후 홍수가 반복됐지만, 병원은 비상전력기를 높은 곳으로 옮기거나 하수시설을 보강하지 않고 버텼다. 80년동안 괜찮았다는 핑계를 대며. 2005년 8월 28일, 뱁티스트에는 183명의 환자가 있었고, 직원과 환자의 가족까지 2000명 안팎의 사람이 건물에 있었다. 카트리나는 8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를 몰고왔다. 병원 바깥에 1m 가량 물이 차오르게 만들었고, 지붕과 유리창 천장 타일을 날려버렸다. 비가 멎고 오후가 되자 지하층에 고인 물도 빠지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무사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뉴올리언스를 보호하던 제방이 터졌다. 주방위군은 5m쯤 물이 차오를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병원의 환자를 대피하기 위해 중역들은 정부 관리와 접촉했다. 상원의원실의직원은 주지사와 의료보험 센터에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고, 그들은 오히려 유관 병원 협회장에게 연락해보라고 답했다. 미국병원연맹에서는 다시 보건복지부로 말을 돌렸고, 그들은 또다시 연방재난관리청에 이야기를 전달했다. 어디에도 책임자는 없고, 손가락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했다.

결국 수백명이 고립됐다. 병원에 처음으로 헬리콥터를 통한 외부의 손길이 닿은 건 의사들은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병원에서 환자들과 사투를 벌인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 병원은 사린가스 공격 대비 등의 재난 대비 훈련을 했다. 하지만 비상 전력이 나가고, 수도가 끊어지고 교통이 단절되는 상태를 대비한 훈련은 한 적이 없었다. 모든 문제는 경험을 토대로 해결 방법을 찾는다. 홍수는 완전히 대비 능력 밖의 재난이었다. 카트리나가 오기전 도시 전체에는 의무 대피령이 내려졌지만, 위급 환자들은 따를 수 없었다. 구조 헬기 조종사들은 위험한 야간비행을 감행해 달려왔지만, 착륙장에 있던 의사는 당장 구조가 필요한 위급환자는 없다며 돌려보냈다. 헬기가 막히자 에어보트가 접근해왔다. 전국에서 달려온 민간 구조대가 그나마 병원의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고립된 사람들은 인질극과 탈옥, 경찰을 향한 총격이 벌어진다는 라디오의 뉴스를 듣고 겁에 질려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였다. 병원의 원칙은 위급한 환자부터였다. 하지만 의사들은 심폐소생술 거부를 요청한 DNR 중환자들을 맨 끝으로 미뤘다. 걸을 수 있는 이는 1등급, 부축을 필요로하면 2등급, 위중한 환자는 3등급이 됐고, 이 순서를 따라 대피가 이뤄졌다.
병원에서 맞는 다섯째날. 정전과 단수로 병원 내부는 완전히 오염됐다. 내부에는 3등급 환자와 그들을 돌보는 소수의 의사, 간호사만이 남았다. 처음으로 DNR 환자의 안락사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 본인이 DNR이라면 차라리 천국으로 가게 해달라 빌었을거라 발언했다. 더러운 바닥에 누워 약품도 없이 버티는 환자들이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것과 같다고 설득한 것. 의사 존 틸과 애너 포가 벤조디아제핀의 혼합제를 만들었다. 환자들을 잠재워 죽게 만드는 약물이었다. 누워서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았다. 지시를 따르며 간호실장은 질문했다. 우리가 정말로 이렇게 해야만 하나요?”
남은 이들은 병원을 탈출했고 메모리얼의 5일은 마무리됐다. 묻혀질 뻔한 이 사건은 병원 예배당 등에서 의문의 시신 45구가 발견되면서 수면위로 드러났다. 주사를 놓은 의사 애너 포와 잔호사 2명을 검찰은 기소했지만, 그들을 옹호하는 미국의사협회 등의 반대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재난 상황에서의 특수성을 감안해 기각된 것이다. 애너 포는 증언과정에서도 섬뜩한 상황에서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했고, 스스로 옳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했다”고 끝끝내 변명했다.
저자는 5일간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다큐멘터리를 보듯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저자의 마지막 말은 의미심장하다. 재난 직후 삶과 죽음의 차이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대비 태세와 수행과 의사 결정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이런 끔찍한 압력 하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상황임을 저자는 설득력있게 증언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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