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깨고 싶지 않은 청춘의 밤을 노래하다
입력 2015-07-05 15:22 

4인조 청년 밴드 ‘레이크의 멤버들은 소문난 주당이다.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리더 유종한(27)부터 앉았다 하면 소주 4병은 거뜬히 마신다. 나머지 김동수(드럼·27), 문기웅(기타·25), 김윤수(베이스·24)도 술을 꽤 하는 편이다.
앨범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곡을 쓰기 시작했다. 번번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종한은 하루 작정하고 술을 마셨다. 경기 시흥 과림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그것도 혼자. 친구들을 부르고 싶었지만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취기가 단숨에 올랐고 어느 순간 기억이 끊겼다.
다음날 연습실에 가보니 다른 멤버들이 각자 자기가 맡은 드럼과 베이스 비트를 따고 있었다. 유종한은 정신을 잃었던 전날 밤 자신도 모르게 이메일로 멤버들에게 초벌 악보와 가사를 보냈던 것이다. 모두들 제 정신으로 만든 노래보다 훨씬 흡족해 했다. 어쩌면 이 곡은 호수와 달빛, 그리고 주신(酒神)이 남긴 선물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온 노래가 이달 1일 발매한 새 미니앨범 ‘The Lake in the City의 타이틀 ‘미드나잇이다. 생기발랄한 모던록 스타일의 노래다. 몽환적인 기타에 가슴 두근거리는 드럼 사운드가 청자의 오감을 자극한다. 보컬, 연주 모두 제법 완성도가 높다. 이들은 노래한다. ‘어두워진 거리 나에겐 좀 부족해/네가 오기 전까지 이 자리에서 널 기다려/모두가 잠든 밤 나만의 술에 난 취해볼래/달콤할 것 같아
더 놀라운 것은 나머지 4개 수록곡도 모두 만취 상태에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한심한 청년들이란 생각은 잠시 제쳐두자. 노래가 훌륭하니까. 게다가 중국 대시인 백거이(772~846)과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1536~1593) 모두 술이라면 지지 않는 소문난 애주가였다. 술이 없었다면 이들의 주옥같은 명작은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인생은 짧고 밤은 길다. 입시·취업 관문과 사랑하는 님은 멀고 술은 가깝다. 청춘들에게 술이 둘도 없는 친구이자 연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리더 유종한이 말했다. 호수와 술이 노래를 만들었죠. 취할 때 만든 노래가 좋아서 버릇이 돼버렸어요. ‘청춘의 밤은 저희에게 어떤 의미냐고요? 당연히 술이죠.(웃음)”
수록곡 전반을 구성하고 있는 또 하나의 모티브는 ‘직진성이다. 가사에 ‘날다(fly)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한편 기타와 드럼 연주도 쭉쭉 뻗어나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다른 표현으로는 ‘못 먹어도 고(go) 정도 될까. 이는 청춘들만이 가지는 특권이기도 하다. 오글거리게 대놓고 ‘힘내세요라는 표현은 못쓰겠더라고요. 멤버 모두 허세부리는 걸 싫어하거든요. 하지만 듣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저희 같은 사람을 위해서라도요.”
레이크 새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은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마치 브릿팝처럼. 역동·직선적이면서도 환상·몽환적인 속성이 교차하는 이중성도 매력이다. 허스키한 미성 보컬과 기타 선율이 도드라진다. 5곡을 연달아 들으면 깨고 싶지 않은 청춘의 밤 이미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레이크 멤버 대부분이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토종 한국 청년들이다. 간만에 가능성 있는 밴드를 만난 것 같아 무척 반갑다.
[이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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