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대통령의 진노와 국민의 마음
입력 2015-06-25 18:18  | 수정 2015-06-26 08:21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대통령령 등 정부 특별령에 대해 국회가 법률에 위반될 경우 시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입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이 부여한 정당한 권리입니다.

대통령의 거부권 사례는 앞서 72차례나 있었기에 이를 문제삼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배경을 설명하면서 국회를 강하게 질타한 대목입니다.

박 대통령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박근혜 / 대통령
-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을 위한 일에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부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한 개정안을 다시 시도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대통령
- "정치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먼저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이 잘 될 수 있도록 국회가 견인차 역할을 해서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부와 정부 정책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 비판만을 거듭해 왔습니다."

국회가 그동안 정부의 발목을 잡는 일만 했지, 국민을 위해 한 일이 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우리 국회는 그동안 민생을 외면한 채 당리 당략에 따라 싸움을 벌일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말이 모두 틀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국회의 한 구성원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있는 동안 국회는 제역할을 다했을까요?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때문에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이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이었을까요?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었습니다.

여당에 대한 서운함도 당시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오늘 박 대통령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대통령
- "정부를 도와줄 수 있는 여당에서조차 그것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대통령
- "정치권의 존재의 이유는 본인들의 정치생명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둬야함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집권 여당이 왜 대통령을 도와주지 않느냐
는 서운함을 넘어 분노까지 느껴집니다.



한때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책도 묻어납니다.

이쯤되면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입법부를 상징하는 다수 여당과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관계는 수평적 관계일까요?

아니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처럼 국회는 청와대의 하수 기관에 불과한 것일까요?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그리고 이어진 박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국회와 청와대의 관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정의화 / 국회의장 (오늘)
-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 마음이 많이 무겁고, 국회법을 제딴에는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썼는데 거부권 행사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재의에 부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 인터뷰 : 김무성 / 새누리당 대표 (오늘)
-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기로…. 특별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법률 해석적인 문제다."

▶ 인터뷰 : 문재인 / 새정치연합 대표 (오늘)
- "정치는 사라지고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만 남았습니다. 유독 박근혜 대통령만 거부권 행사로 정쟁을 키우고 있습니다. 자신의 무능을 국회에 뒤집어씌우고 있습니다."

여야는 국회법 개정안을 다시 재의에 부칠까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로서는 곤혹스럽습니다.

재의에 부칠 경우 청와대와 정면 충돌할 것이고, 개정안을 폐기할 경우 국회 위상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년 반 임기를 앞둔 박 대통령의 승부수는 김무성 대표를 곤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지금 국회의원들을 심판해달라고 했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대통령
- "정치적으로 선거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적어도 국민은 지금의 국회가 아닌 대통령과 정부 편이라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보면 긍정 여론보다는 부정여론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그럴게 믿는 근거는 뭘까요?

정치역사적으로 대통령이 되고 나면 친정인 여당과 멀어지는 사례가 종종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도 결국 그런 전철을 밟는 것일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이가영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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